[취재뒷담화]누구도 책임 안지는 ‘48만건의 국가 기밀 유출’

심재철 국회의원실에서 정부의 행정정보 수십만 건을 무단 유출
정부, 대통령비서실 등 37개 부처의 정보가 누설됐음에도 책임자 문책 없어

안종호 경제부 기자

최근 심재철 국회의원 보좌진들이 정부기관의 행정정보 수십만 건을 무단 유출한 것과 관련해 기획재정부와 심재철 의원실의 공방이 치열합니다. 이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간의 싸움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자세한 결과는 검찰이 수사를 해야 나오겠지만, 지금까지 심재철 의원실과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기자회견, 보도자료를 종합하면 한국재정정보원은 9월 12일에 시스템의 과부하 및 오작동 원인을 분석하던 중 심 의원실의 비인가 영역 무단 다운로드를 인지했습니다.

기획재정부가 17일 심 의원 보좌진을 행정정보 무단 열람 혐의로 고발했고, 27일에는 심 의원에 대해서도 예산정보 불법 유출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심 의원의 경우 검찰 조사에 따라 정보통신망에서 처리·보관되는 타인의 비밀 누설과 행정정보의 권한없는 처리를 금지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전자정부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소지가 있습니다.

다만 정부의 대처 또한 아쉽습니다. 대통령비서실과 국무총리실·기재부·대법원·헌법재판소·법무부 등 37개 부처의 국가 기밀 정보가 허술하게 털렸음에도 정부 관계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습니다.

재정정보원은 이번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 두 달간 1억5000여만 원 상당의 보안 컨설팅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컨설팅을 통해 취약점 및 개선 방향에 대해 보고받고도 심 의원 측의 비인가 정보 습득 가능성을 차단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책임이 있습니다.

재정정보원은 ‘경계’에 실패했습니다. 시스템 오류였든, 컴퓨터 키보드의 특정 자판을 연속으로 입력해 생긴 오작동이든, 광범위한 의미의 해킹이든 경계에 실패한 것은 명백합니다.

2012년 북한 병사의 노크 귀순이 있었습니다. 2012년 10월 2일 북한군 병사가 군사 분계선을 넘어 대한민국 측 일반 전초 소초의 문을 두드리고 귀순한 사건입니다.

이로 인해 국방부 장관이 사과하고 사단장·연대장·대대장 직위해제, 1군 사령관 및 8군단장은 ‘장관 엄중 경고’ 등을 받았습니다. 경계 작전의 실패에 따른 책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9월 3~12일 비인가 영역의 다운로드가 진행되고 있는 점을 아무도 모른 채, 48만건의 국가 기밀이 유출되고 나서 시스템 과부하가 생기자 그제서야 정부 관계자들은 심 의원실을 비판하기에 급급한 상황입니다.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