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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아베에 ‘평화조약’ 깜짝 제안 왜? “일본, 이용가치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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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진 기자

승인 : 2018. 09. 13. 15:17

Russia Japan <YONHAP NO-6253> (AP)
북방영토(쿠릴 열도) 반환 카드로 국제무대에서 일본을 활용해 왔던 러시아의 행보가 변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10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가 악수하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 조건없는 평화조약을 체결하자고 ‘깜짝’ 제안을 했다. 일본이 중요하게 여기는 영토 분쟁 문제를 쏙 뺀 제안으로, 일본 입장에서는 바라던 평화조약을 앞에 두고도 받아들일 수 없어 보인다. 러시아가 이 같은 제안을 한 것은 ‘일본의 이용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대두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에서 조건없는 평화조약 체결을 제안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13일 전했다. 양국 정상회담도 아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등 각국 정상이 참석한 자리에서 “사전 조건을 붙이지 말고 연말까지 평화조약을 체결하자”고 말했다는 것. 푸틴 대통령은 “지금 생각이 났다”고 말하며 제안했지만 포럼의 진행 순서를 고려했을 때 미리 준비한 발언일 가능성이 높다고 신문은 분석했다.

푸틴 대통령이 말한 ‘조건’은 쿠릴 열도 문제다. 실제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정례 브리핑에서 “북방영토(쿠릴 열도) 일본 귀속 문제를 해결하고, 평화조약을 체결하겠다는 기본 방침 하에서 끈질기게 러시아와 협상하겠다는 자세에 변화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일본은 러시아가 실효 지배중인 쿠릴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의 일본 귀속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며, 러시아는 쿠릴 열도 반환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평화조약 체결은 항상 ‘논의’만 되풀이 해왔다.
이에 푸틴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쿠릴 열도 관련 영토 문제에 대해 ‘새로운 접근’을 하자고 2년 전 합의했다. 2년 간 러시아는 일본을 어떤 카드로 이용해 왔을까.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실효 지배를 하고 있는 쿠릴 열도를 활용해 일본을 손에 쥐고 미국의 동맹 흔들기와 중국과의 외교에서 균형 맞추기에 이용해 왔다.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 병합으로 서방 국가들의 비난이 빗발칠 때도 주요 7개국(G7)의 결속을 방해하기 위한 카드로 일본을 이용했다. 쿠릴 열도 문제 협상 등을 위해 아베 총리나 일본 각료들이 계속 러시아를 방문하자 러시아는 이를 전세계에 ‘자국이 고립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2년 간 세계 정세는 크게 바뀌었다. 바뀐 만큼 러시아에게 일본 카드는 이전처럼 큰 매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동맹국과의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독단적인 행동을 일삼았다. 통상·안보 분야에서 동맹인 유럽과 일본을 압박하기도 했다. 닛케이는 미국과 일본의 동맹관계가 “삐걱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에서는 과거와 달리 러시아와의 융화를 주장하는 세력이 대두했다. 대(對) 러시아 제재를 주도하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지난달 푸틴 대통령과 3시간에 달하는 회담을 가졌다. 양국 정상회담은 크림반도 병합 이후 처음이다. 러시아가 국제사회와 고립되어 있지 않다고 ‘선전’을 할 필요가 없어졌으며, 선전 수단으로서 활용하던 일본의 역할도 희미해졌다.

러시아의 대 중국 전략도 변화했다. 지난 11일 러시아군 30만명이 참가한 최대급 규모의 ‘동방-2018’ 군사훈련에 이례적으로 중국군도 참가했다. ‘신 밀월’ 관계를 과시하며 미국에 대한 견제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 대변인은 이를 설명하며 중국을 ‘동맹국’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2016년 미국 대선 개입 문제 등으로 미국의 대 러시아 경제 제재는 더욱 강해지고 있어 사실상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 복원은 멀어 보인다. 이에 중국에 대한 의존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크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러시아는 전략 사업인 북극해 개발에서도 중국과 협력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세계 질서가 크게 흔들리면서 아베 총리의 외교 역시 막다른 골목에 직면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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