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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골짝마다 짙은 차향, 섬진강은 ‘재첩 밭’…경남 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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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글·사진 김성환 기자

승인 : 2018. 05. 15. 11:42

여행/ 모암마을 야생차밭
화개골 모암마을 야생차밭. 찻잎을 따는 촌부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지난 겨울 추위를 견딘 야생차나무들이 싱싱한 찻잎을 선사한다.


매화와 벚꽃이 훑고 지난 자리에 초록융단이 깔렸다. 차(茶) 이야기다. 찻잎에 물이 올랐다. 꽃향기가 진동하던 골짜기에 쌉쌀한 차향이 가득하다. 섬진강은 이맘때 재첩을 쏟아낸다. 경남 하동의 5월 풍경이 이렇다. 화려한 꽃무리가 지나갔어도 여전히 넉넉하고 풍요롭다.

봄이 완연한 골짜기를 따라 차향을 좇았다. 경남 하동에서 만난 문화해설사는 “야생차나무는 수직으로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린다. 그래서 생명력이 강하다. 지난 겨울 냉해도 잘 견뎠다”고 했다. 전남 보성이나 강진 등에서 볼 수 있는, 모양이 가지런한 재배차밭의 차나무는 뿌리를 넓게 수평으로 뻗친다. 이들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냉해를 입었다.
 

여행/ 모암마을 야생차밭
화개골 야생차나무들은 바위가 많은 비탈에 뿌리를 내렸다. 몸을 가누며 찻잎을 따는 일이 만만치 않다.


하동 화개면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방향으로 화개천을 따라 이어진 화개골에는 재배차밭도 있지만 유독 야생차밭이 많다. 야생차밭은 재배차밭보다 모양이 부산하다. 바위가 많은 비탈에 고집스럽게 자란 차나무들이 자유롭게 무리를 이룬다. 혹자는 “몽글몽글 뭉친 모습이 해파리떼 같다”고 했다. 이곳 재배차밭들은 냉해에 듬성듬성 찻잎이 시커멓게 타들어간 흔적을 남겼다.  

 

그러나 야생차밭의 초록은 웅숭깊다. 특히 모암마을 비탈에서는 야생차밭의 전형을 만난다. 신록보다 예쁜 빛깔을 가진 ‘해파리떼의 향연’이 펼쳐진다. 이것을 딱 5분만 바라보면 마음까지 맑은 초록이 된다. 촌부들은 우전(곡우 이전에 따는 차) 다음으로 나오는 세작과·중작을 따느라 분주하다. 위태롭게 비탈진 차밭, 애써 몸을 가누며 찻잎을 따는 촌부의 억척은 또 어찌나 그윽한지….

삼국사기는 “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대렴이 차나무 씨앗을 가져오자, 왕이 지리산에 심게 하였다. 차는 선덕여왕 때부터 있었지만 이때에 이르러 성하였다”고 전한다. 여러 정황들을 종합해볼 때 대렴이 종자를 심은 곳이 쌍계사 인근 화개골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화개골은 우리나라 차의 시배지가 됐다. 그러나 공식기록 이전에도 일대에는 야생차나무들이 자생했다고 전한다. 
 

여행/ 칠불사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연등이 걸린 칠불사. ‘차의 성인’으로 불리는 초의선사는 이곳에 머물며 하동의 차를 바탕으로 ‘초의다신전’을 저술했다.
여행/ 매암차박물관
매암차박물관의 다원. 창문으로 보이는 차밭의 풍경이 마치 수채화가 그려진 액자처럼 보인다.


차와 관련한 이야기는 하동 화개면과 악양면 곳곳에 부려져있다. 화개면의 쌍계사 진감선사탑비(국보 제47호)에는 ‘덩이(덩어리) 차를 가루로 내어 끓여 마신다’거나 ‘다구로는 돌솥이 사용됐다’는 등 신라인의 차 문화를 알 수 있는 구절들이 나온다. 신라 후기의 고승인 진감선사는 차 보급에 앞장선 인물로 전한다. 쌍계사에서 차로 약 20분 거리에 칠불사가 있다. ‘차의 성인’으로 불리는 조선후기의 고승 초의선사는 이곳에 머물며 하동의 차를 바탕으로 ‘초의다신전’을 썼다.

하동 사람들에게도 차를 마시는 것은 생활의 일부였다. 하동 악양면의 매암차박물관 강동오 관장은 “하동에서는 오래전부터 배가 고프거나 아플 때 ‘잭살’이라는 차를 만들어 마셨다”고 했다. ‘잭살’은 ‘작설’이 변형된 말인데, 작설은 참새의 혀처럼 작은 찻잎을 가리킨다. 차나무의 새싹이 곧 ‘잭설’인 셈이다. 매암차박물관에는 무인 다원이 있다. 전통 홍차나 녹차를 끓여 마시고 돈통에 찻값 3000원을 내면 된다. 다원 창문으로 보이는 차밭 풍경은 그림처럼 예쁘다. 차밭을 산책하는 서정도 만끽할 수 있다.

역사가 깊다고 다 명차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맛과 향이 뛰어나야 한다. 화개골의 차는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조정에 진상되며 최고의 차로 추앙받았다. 이에 반한 추사 김정희는 “중국 최고 차인 승설차보다 낫다”고 예찬했다. 초의선사는 화개골 차를 두고 “신선 같은 풍모와 고결한 자태는 그 종자부터가 다르다”고 극찬했다.

화개골의 특별한 기후조건과 토질은 차의 맛과 향을 깊게 만든다. 문화해설사는 “차 재배에는 일조량이 중요하다. 화개천과 섬진강이 만나면서 생기는 안개가 골짜기의 햇빛과 습도를 잘 조절해 준다”고 했다. 여기에 찻잎을 직접 따고 다듬는 정성, 대대로 이어진 덖음 기술(제다법)의 노하우가 곁들여져 명차가 만들어진다.
 

여행/ 섬진강 재첨채취
재첩채취가 한창인 섬진강하구. 섬진강 재첩채취는 3, 4월부터 시작돼 10월까지 이어진다.

하동차생산자협의회 회장을 역임한 박성연 씨는 “(하동의) 차 재배면적은 전국의 35%, 재배농가는 전국의 43%를 차지한다. 그런데 생산량은 약 25%에 머무른다. 재배차의 티백 생산량이 적기 때문이다”고 했다. 티백용으로 쓰이는 차는 우전·세작·중작·대작 다음인 하품으로 친다. 하동 차의 절반 이상이 화개면에서 나고 화개면의 차 대부분이 화개골에서 생산된다. 2009년에는 이곳에서 생산된 차가 1kg에 2500만원에 팔리기도 했다.

하동 화개면과 악양면 일대에서 매년 이 맘때 하동야생차문화축제가 열린다. 올해 축제는 19일부터 22일까지 열린다. 하동녹차는 지난해 11월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가 선정하는 세계중요농업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 축제에서는 이를 알리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세계 10개국의 차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세계 차 문화 페스티벌, 다례경연대회 등도 진행된다.

섬진강은 이 맘때 ‘재첩 밭’이 된다. 하동 섬진강하구에 재첩특화마을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3, 4월부터 10월까지 강물에 몸을 반쯤 담그고 재첩을 채취한다. 강을 가득 메운 이들의 모습은 도시인에게는 낯설고 흥미로운 풍경이 된다. 이 마을 식당 종업원들은 한결 같이 “지금 잡히는 것이 맛이 좋다”고 말한다. 섬진강의 재첩은 일본 사람들도 알아줬다. 맑은 물 모래밭에서 자라 맛이 좋은데다 국을 끓인 후 식혀도 비린내가 안 나서란다. 하동의 청청한 골짜기와 맑은 강물은 5월에도 이토록 넉넉하다.
 

여행/ 금오산 짚라인
금오산 집라인. 한려해상을 바라보며 짜릿한 활강을 체험할 수 있다.
여행/ 구재봉
구재봉에서 본 섬진강과 악양들판.


◇ 여행메모

화개골이 있는 화개면에는 요즘 예쁜 카페들이 많이 생겼다. ‘젊은 느티나무’는 로스팅 커피 전문점으로 모암마을 야생차밭을 조망할 수 있는 명소다. ‘윤슬당’은 구기자떡이 맛있는 카페다. ‘찻잎마술’은 녹차소금, 녹차꽃즙 등 차를 이용한 재료로 밑간을 한 음식을 판매한다.
화개골에 위치한 켄싱턴리조트 지리산하동은 6월 30일까지 하동 녹차밭에서 찻잎을 따고 차 문화를 체험하는 힐링형 패키지를 판매중이다. 객실과 함께 하동야생차박물관에서 진행하는 다례체험, 찻잎따기, 덖음체험 등(약 1시간 40분)으로 구성된 패키지 가격은 18만3900원부터(매주 토요일 이용 가능)다.

하동에는 볼거리, 즐길거리가 많다. 소설 ‘토지’의 무대인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 소나무가 우거진 하동읍의 송림, 가수 조영남의 노래로 잘 알려진 화개면의 화개장터는 이미 잘 알려진 명소다. 섬진강 물길과 악양 평사리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적량면의 구재봉(728m), 한려해상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금남면의 금오산은 장쾌한 풍광이 압권이다. 두 곳 모두 정상부까지 자동차로 갈 수 있다. 특히 금오산 정상에는 집라인이 있는데 한려해상을 바라보며 짜릿한 활강을 체험할 수 있어 찾는 이들이 많다.  

하동/ 글·사진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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