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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일 미 캘리포니아주 남부 샌버너디노(San Bernardino) 지역에서 테러리스트들의 무차별 테러 공격이 있었다. 14명의 무고한 시민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22명이 중상을 입은 비극적 사고였다. 미 FBI는 위 테러리스트 중 한 명인 파룩(Farook)을 추격해 사살했고 그가 소지한 아이폰(Apple iPhone-5C 기종)을 입수했다. 이 아이폰을 통해 범행 증거를 확보하고 배후의 인물은 없는지, 추가 테러 위험은 없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아이폰의 잠금장치가 문제였다. 강화된 보안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미국 NSA(National Security Agency·국가안보국)에서도 잠금장치를 해제하지 못한 것이다. 이에 FBI는 직접 애플사에 ‘GovtOS’라 불리는 보안 시스템을 해체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애플사는 “그러한 보안 해제 작업을 할 경우 나머지 모든 이용자들의 프라이버시 침해 위험까지 높아질 수 있다”며 FBI의 요청을 거절했다.
이에 FBI는 미 캘리포니아주 연방중앙지방법원(CDCA)에 “애플사로 하여금 위 보안 해제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제작하여 제공하도록 명령해 달라”고 신청했다. CDCA는 2016년 2월 16일 FBI의 신청을 인용했다. 예상대로 애플사는 법원의 명령을 따르지 않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고, 이용자들에게도 보안 시스템을 저해하는 그 어떤 행위도 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면서 연방항소법원에 항소했다. 한편 미 뉴욕주 연방동부지방법원(EDNY)은 미 법무부가 애플사를 상대로 마약 사범이 소지한 아이폰 잠금장치의 해제 명령을 구한 사건에서 완전히 상반된 결정을 내렸다. “법원은 특정 법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제품을 변경(modify)하도록 명령할 권한이 없고, 이를 허용하는 것은 법치주의에 반한다(obnoxious to the law)”는 것이다.
결국 FBI가 애플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잠금장치를 풀어 분쟁이 일단락됐지만, 이 이슈는 그 후에도 미국 법조계와 정치권을 뜨겁게 달궜다. 국가 안보가 위협받는 상황인데 프라이버시 보호만을 우선시하는 애플사의 기업윤리를 나무라는 측과, 이용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보호하려는 애플사의 책임있는 자세에 찬사를 보내는 측 사이에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국내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검찰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자들의 카카오톡 대화내용을 증거로 수집해야겠다며, 감청 영장을 발부해 다음카카오의 협조를 구했다. 국가 안보를 위해 개인의 사생활 정보를 수집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카카오는 이용자들의 프라이버시가 심각하게 침해될 수 있기에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미 발부된 영장의 집행을 거부하기 어려워 우선은 협조했고, 검찰이 지정한 일자에 피의자가 남긴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출력물의 형태로 검찰에 제공했다. 하지만 프라이버시 보호를 주장하는 이용자들의 비판이 잇따랐다. 그런데 2016년 10월 대법원에서 이러한 방식의 증거수집이 위법하다고 판결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대법원 2016도8137 판결).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검찰의 영장에 의한 감청(통신제한조치)은 실시간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므로, 이미 수신이 완료된 개인의 대화내용을 열람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것이다.
이에 다음카카오는 실시간 감청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향후 검찰의 감청 영장 집행에 응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나아가 이용자들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대책도 발표했다. 첫째 서버에 대화를 저장하는 기간을 2~3일로 크게 단축하고, 둘째 서버에 저장되는 대화내용도 대화 당사자만 암호를 풀 수 있도록 모두 암호화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미 수신이 완료된 대화내용에 대해서도 검찰의 압수수색이 쉽지 않게 됐다. 감청 영장과 달리 압수수색 영장의 경우 집행을 거부할 수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은 보안 조치가 의미를 갖는다. 자료 자체가 존재하지 않거나 협조가 가능하지 않은 자료의 경우 실질적으로 영장이 집행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온라인상에서 개인의 모든 일상이 기록되고 타인과의 교류가 이뤄지는 시대가 됐다. 프라이버시 보호의 필요성이 날로 커질 수밖에 없다. 통신사업자들 역시 이용자 보호를 최우선의 원칙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원칙적으로 타당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헌법상 권리인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하기 위해서는 현존하는 공익상의 위험이나 공적 필요성이 엄격하게 소명돼야 한다. 잠금장치를 해제하지 않으면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험이 초래될까? 국가기관이 답해야 한다. 그 답변이 충분히 이뤄졌을 때, 비로소 프라이버시의 희생을 논해야 하지 않을까? <허종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