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메일 모니터링 결과 B는 회사의 현안과 주요 영업정보 일부를 경쟁사 직원에게 보낸 것이 확인됐고, 경쟁사로 이직을 준비했던 정황도 확보됐다. A는 징계위원회를 열어 B를 해고했다. A는 신속한 조치로 회사의 추가 손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A는 이번 일을 계기로 전 직원 대상의 상시적 이메일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B가 A를 고소했다는 것이다. 비리로 해고된 B가 오히려 자신을 고소했다는 사실에 A는 황당했다. 과연 A의 행위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A가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직원의 이메일이나 메신저, 컴퓨터 하드웨어에는 통상적으로 해당 직원의 개인정보나 비밀이 포함돼 있다. 사용자가 직원의 동의 없이 열람하는 행위는 헌법상 보장되는 통신의 자유와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것이고, 정보통신망법위반죄와 형법상 비밀침해죄가 문제될 수 있다.
A는 직원의 비위사실을 확인하려면 이메일 열람이 불가피했다고 생각했다. 형법상으로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한 행위라는 주장이다.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직원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메일을 열람할 필요가 있는 상황은 닥치게 마련이다. 모든 업무가 컴퓨터와 이메일로 처리되는 현재의 사무환경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법원 실무상 정당행위 인정은 상당히 엄격하다. 우선 B가 비위행위를 저질렀을 것이라는 의심이 구체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긴급히 대처할 필요성이 인정된다. 상시적 감시 목적의 광범위한 이메일 모니터링은 허용되지 않는다. 모니터링 범위도 비위사실과 관련된 최소한으로 국한돼야 한다. 의심되는 경쟁사나 해당 직원 이름 등 몇 가지 검색어로 범위를 한정해서 조사하는 방법이 적당하다. 이메일 전수조사를 지시하거나 열람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잡으면 안 된다. 예컨대 이메일 제목만 보더라도 업무와 관련 있는 내용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내용을 들여다보는 것은 위험하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전직원을 대상으로 이메일 열람에 관한 동의서를 미리 받아두기도 한다. 하지만 동의서를 받는 것만으로 회사가 모든 조치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오산이다. 회사에 매여 있는 직원은 동의를 거절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므로, 동의서에 기재된 사전적·포괄적 동의는 진정한 동의로 취급되기 어렵다. 동의서는 정당행위의 성립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하다. 오히려 열람가능범위를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규정하면 일상적 노동감시 의혹으로 기업 이미지만 나빠질 수 있다.
A는 과연 위와 같은 요건을 갖춰 B의 이메일과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조사했을까? B가 의심스럽다는 소문을 들었고, 조사결과 실제로 비위증거가 나왔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동의서를 미리 받아두면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조사과정에서 열람의 범위를 최소화하고 가능하면 직원의 참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줄 필요도 있다. <최정규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