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리뷰]“왜 우린 밤낮 울고불고 살아야 하나?” 질문 던지는 연극 ‘산허구리’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161009010004358

글자크기

닫기

전혜원 기자

승인 : 2016. 10. 09. 13:44

국립극단, 고선웅표 사실주의극 통해 먹먹한 감동 전해
국립극단의 연극 '산허구리' 중 한 장면.
국립극단의 연극 ‘산허구리’ 중 한 장면.
노어부는 고기를 잡다 상어에 물려 한쪽 다리가 잘린 후 술로 세월을 보낸다. 이미 첫째 아들과 큰 사위를 바다에 잃은 노어부의 처는 둘째아들 복조가 탄 배가 며칠째 돌아오지 않자 실성한 상태로 애타게 기다린다.

일제강점기 서해안의 어느 마을, 한 가족의 비극적 이야기가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 무대 위에서 생생하게 펼쳐졌다. 국립극단이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여섯 번째 작품으로 선보이는 연극 ‘산허구리’를 통해서다.

국립극장장을 지낸 관록의 무대 미술가 신선희가 오랜 분석과 고증을 통해 사실적으로 재현해낸 무대는 관객을 1930년대 어촌의 한 초가집으로 데리고 간다.

삶의 터전인 동시에 처절한 생존의 공간인 산허구리에서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가난에 시달리며, 아들과 사위, 남편의 죽음을 어쩔 도리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가족의 비극이 처절하게 그려진다.

이 연극은 함세덕 작가가 1936년 ‘조선문학’을 통해 21세 나이에 발표한 첫 작품이다. 식민지 시대 우리 민족의 궁핍한 현실을 고발한 이 작품은 당시 참담한 시대상과 시대적 모순을 날 것으로 재현하면서 현실 극복의 의지도 동시에 보여준다.

아일랜드 작가 존 밀링턴 싱의 ‘바다로 가는 기사들’에서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하지만 자식을 바다에 잃은 어머니라는 콘셉트만 비슷하고, 배경과 인물 묘사 등은 한국적으로 풀어내 전혀 새롭고 독창적인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연출을 맡은 고선웅은 ‘각색의 귀재’로 불리지만 이 작품에서는 마지막 장면 외에는 원작 희곡 그대로를 오롯이 전달한다.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으로 지난해 연극계 모든 상을 휩쓴 고선웅이 원작에 살을 덧붙여 연출해낸 공연 말미는 그야말로 이 작품의 백미다.

실성한 어머니가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둘째 아들 복조와 재회하는 장면은 울컥 솟구쳐 오르는 슬픔과 가슴 먹먹한 감동을 전한다.


국립극단의 연극 '산허구리' 중 한 장면.
국립극단의 연극 ‘산허구리’ 중 한 장면.
당시 인물들의 옛 방언을 생생하게 구사하는 이 연극에서 셋째 아들 석이의 대사는 관객의 뇌리에 박힌다.

“웨 우리는 밤낮 울고불고 살아야 한다든? (중략)웨 그런지를 난 생각해볼 테야. 긴긴 밤 개에서 조개 잡으며, 긴긴 낮 신작로 오가는 길에 생각해볼 테야.”

고선웅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내면적인 결핍을 갖고 쉽지 않은 청춘과 인생을 살고 있는 오늘날 관객들에게 화두를 던지고 함께 담론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함세덕 작가는 짧은 기간 동안 왕성한 활동을 펼친, 우리 연극사에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지만 현대사의 혹독하고 혼란스러운 시기에 살아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다”며 “‘서정적 리얼리즘’과 ‘어촌문학’이란 큰 의미를 품고 있는 ‘산허구리’를 통해 그의 초기작을 재조명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국립극단은 근대를 조명해 동시대 한국인의 정체성을 묻고 확인하고 규명하고자 준비한 기획 시리즈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을 2014년부터 선보여왔다. 이를 통해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 ‘이영녀’ ‘토막’ ‘국물 있사옵니다’ ‘혈맥’ 등 잊혀진 수작들이 부활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김윤철 예술감독은 “한국인의 정체성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는 것이 국립극단이 해야 할 일”이라며 “오영진, 유치진, 김우진, 함세덕 등 근대극에 천재들이 참 많다. 우리에게 이렇게 위대한 연극적 유산이 있었는데 그간 폄하하고 다루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립극단의 연극 '산허구리' 중 한 장면.
국립극단의 연극 ‘산허구리’ 중 한 장면.
전혜원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