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억달러 만들어 초대형 선박구입 원조
부채비율 400%이하 업계 우선 지원
"현재로선 생존이 급선무…관심 없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업은행 등 5개 정책금융기관은 지난 21일 ‘초대형 선박 신조 지원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미화 12억달러 규모에 달하는 선박펀드를 조성키로 했다.
이는 지난해말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산업별 구조조정 계획안’의 후속조치로, 경기침체 지속에 따른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해운업계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선박펀드를 조성해 초대형·고연비 선박 신조를 우선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지원대상은 자구노력을 통해 부채비율을 400% 이하 낮추는 등 일정 조건을 갖춘 해운사로, 이들의 신조 지원 요청에 따라 수요를 감안해 10척 내외의 1만3000TEU 이상급 컨테이너선을 세 차례에 걸쳐 분할 구입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산은 등 5개 정책금융기관은 ‘선박 신조 지원 프로그램 실무지원반’을 구성해 부산에 위치한 해양금융종합센터 내에 설치할 예정이다. 해운사를 대상으로 선박펀드 지원 업무를 총괄하는 간사 역할은 산은이 맡는다.
산은 측은 “이번 선박펀드는 자구책을 통해 재무건전성을 확보한 해운사들에게 새로운 성장의 발판을 제공하기 위해 조성되는 것”이라며 “해운사들이 초대형·고효율 신조 선박 발주시 투자부담을 최소화하는 한편, 초대형선 선복량 확보를 통해 공동 얼라이언스 참가자격을 유지해 중장기적인 영업력 유지를 가능하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영악화로 유동성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해운사 입장에서는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대부분의 해운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산을 매각해 부채비율을 낮추는 등 치열한 자구노력 기울이고 있다”며 “이 같은 어려움이 유동성 부족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거액의 선박펀드 지원을 받아 초대형 선박을 구입하려는 해운사는 아마 한 군데도 없을 것”이라며 볼멘소리를 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초대형 선박 신조 지원을 통해 국내 해운업계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선박펀드 조성 취지 자체는 공감한다”면서도 “현재 생존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업계의 상황 하에서는 솔직히 관심 밖의 사항일 뿐”이라고 말했다.
특히 현대상선의 경우 오는 29일 자율협약에 따른 추가지원이 결정되면 선박펀드 지원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산은 측은 현대상선의 자율협약이 결정되면 선박펀드 지원 여부에 대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일 뿐 원천적으로 지원이 금지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1만3000TEU 이상 초대형 선박을 보유한 외국 선사와 경쟁하는 국내 해운사들이 같은 조건을 갖출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추진되는 것”이라며 “국내 해운업계의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추진하는 방안일 뿐 당장 초대형 선박을 구입하라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현대상선, 한진해운 외에 실질적으로 선박펀드 지원을 신청할 해운사가 없다는 지적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초대형 선박 구입을 통해 덩치를 키우려는 중견 해운사들 간의 인수합병(M&A)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