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보다 '배지달기' 급급
'국회 무용론' 다시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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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을 받지 못한 후보들은 당적을 옮기는 구태를 반복하고 있다. 정치적 이념과 소신에 따라 당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국회의원 배지를 달기 위해 이합집산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유권자는 안중에 없는 공천싸움이 이어지면서 ‘국회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새누리당은 20일 현재까지 유승민 의원에 대한 공천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7차례에 걸친 공천 결과 발표에도 유 의원만 쏙 뺀 채 “스스로 거취를 결단해야 한다”며 압박하고 있다. 반면 닷새째 칩거 중인 유 의원은 버티기에 돌입했다.
‘보이지 않는 손’ 의혹도 계속되고 있다. 공천 살생부 논란과 여론조사 유출, 윤상현 의원 막말 녹취록 공개 등 대형 파문에 이어 친박계 공천 책임자와 대통령 핵심 참모의 비밀 회동 의혹은 쉬 가라않지 않고 있다.
비슷한 논란은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일고 있다. 핵심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친노(친노무현) 물갈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시민 전 복건복지부 장관과 정봉주 전 의원 등이 팟캐스트 방송에서 김 대표 측근 그룹을 막후실세로 지목한 바 있다. 거론된 인사들은 모두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지만 공천 잡음은 수그러들지 않는 모양새다.
공천을 진두지휘하던 김 대표는 이날 당선안정권 비례대표 공천을 받아 논란이 됐다. 77세인 김 대표가 20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하면 비례로만 5번째 의원이 되는 진기록을 세우게 된다. 당장 ‘심판이 선수로 뛰는 격’ ‘노욕’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국민의당 역시 비례대표 공천을 두고 잡음이 흘러나온다. 일부 공천관리위원들이 비례대표 신청을 위해 공천위원을 줄줄이 사퇴하면서 계파 간 알력다툼으로 비화되는 모양새다. ‘공천관리위원으로 참여한 사람은 당해 선거의 비례대표 후보자 추천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규정을 무력화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여야의 공천이 계파 이익에 매몰된 ‘최악의 공천’으로 얼룩졌다고 입을 모았다.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야를 막론하고 최악의 공천이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상향식 공천을 하겠다던 여당은 위에서 천명하는 식으로 공천을 거의 다 해버렸다”며 “야당의 공천관리위원회도 자의적으로 공천을 해 원칙이 없게 됐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역대 어느 총선에서도 국민에게 이렇게 무례한 공천은 없었다”고 꼬집었다.
의원 본연의 업무인 입법 활동과 정책 제시보다는 개인이나 계파 이익에만 매몰되다보니 공천도 자파 이익에 따른 ‘사(私)천’이 돼 버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무능국회에 쏟아 붓는 국민혈세 수십조가 낭비됐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무노동·무임금’원칙을 국회에 적용해야 한다는 여론도 크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월 1분기 정당 국고보조금으로 99억9095만원이 지급됐다. 정당별로 새누리당 46억9365만원(47.0%), 더민주 41억4503만원(41.5%), 국민의당 6억1790만원(6.2%), 정의당 5억3435만원(5.3%)을 각각 받았다. 총선이 치러지는 올해엔 400억원을 추가로 받는다. 국회의원 한명의 연간 세비는 특수활동비를 빼고도 1억3800만원에 달한다. 영국(1억1600만원 상당)이나 프랑스(1억2600만원 상당) 보다 많은 수준이다.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 외부 위원인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은 “그 당의 개혁 의지와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 공천”이라며 “국민들 입장에선 ‘다들 똑같은 정치인’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선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박 실장은 “19대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보여준 모습이 공천에까지 반영됐기 때문에 이런 평가를 받는 것 같다”며 “개혁에 있어서 양당 모두 실패한 공천”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