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해균/사진=조준원 기자 |
'시그널'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던 건 워낙 쟁쟁한 배우들이 모인 이유도 있었다. 그중 정해균의 존재감도 만만치 않았다. 분명 악역임에도 시청자들을 흔들리게 했다. 탄탄한 연기력이 아니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전개였다.
지난 12일 종영한 tvN 드라마 '시그널'(극본 김은희, 연출 김원석)은 무전기로 인해 과거와 현재의 형사가 연결돼 오래된 미제 사건을 파헤친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다소 환상적인 소재이지만 어느 드라마보다 현실을 직접적으로 다루며 사회 문제를 야기했다.
정해균은 그 중 악의 축 김범주(장현성)의 수하 안치수 역을 맡았다. 시골 관할서 형사였던 안치수는 아픈 딸을 위해 김범주와 손을 잡고 정의로운 형사 이재한(조진웅)을 살인했다. 그 후 김범주는 경찰청 수사국장이 됐고, 안치수는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계장으로 승진했다. 권력과 돈을 위해 정의와 이재한을 맞바꾼 인물이었다.
최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아시아투데이와 만난 정해균은 안치수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선한 인상이었다. 그러나 드라마와 연기 이야기로 빠져 진지해지면 언뜻 차갑고 잔인했던 안치수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다양한 얼굴을 가진 배우의 완성은 연기력이었다. 정해균의 연기력은 그에게 다양한 얼굴을 만들어줬다.
"실제로 10살 된 아들이 있기 때문에 안치수를 만드는데 더욱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어요. 만약 제가 아빠가 아니라면 정의를 지켰겠지만, 아빠이기 때문에 흔들린 안치수도 이해가 가죠. 사실 안치수의 과거가 많이 안 나와서 상상을 많이 해야 했어요. 특히 이재한을 죽이고 나서 그 후 15년을 어떻게 지냈을지 그런 것을 고민했죠. 시청자들도 안치수의 마음을 이해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느꼈어요."
하지만 과거는 바뀌었다. 과거에 이재한에게 망설임 없이 총을 겨눴던 안치수는 흔들렸고, 형기대 형사들이 출동해 이재한은 살아날 수 있었다. 현재와 소통하던 이재한에 의해 과거가 조금씩 변한 것이었다.
"과거의 시간이 원래 벌어졌던 것과 약간 변형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안치수도 변했죠. 과거의 이재한이 현재의 박해영(이제훈)과 무전을 하면서 계속 바뀐 거죠. 과거가 변한 뒤 이재한을 매몰차게 죽이지 못했어요. 과거가 조금씩 변화면서 그 변화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안치수도 변했죠. 잘 보면 인물들의 몽타주도 조금씩 달라요(웃음)."
배우 정해균/사진=조준원 기자 |
'시그널'은 12%의 시청률을 넘기며 큰 사랑을 받았다. 장르물의 한계를 뛰어넘은 데에는 배우들의 열연과 김원석 PD의 섬세한 연출, 김은희 작가의 완벽한 대본이 있었다. 정해균 역시 감탄하며 대본을 읽었고 김원석 PD의 디렉션을 받았다.
"김원석 PD님에게서 가장 놀라웠던 건 '다른 건 다 안 해도 이건 해야 돼' 하시는 게 있었어요. 배우가 혹여나 놓치고 있는 지점들을 콕 짚어주셨죠. 나중엔 왜 하라고 하셨는지 알게 돼요. 정말 신기했어요. 김은희 작가님은 알파고가 아닐까 할 정도로 치밀해요(웃음). 실제로 보면 참 소녀 같은데 어쩜 그런 대본을 쓰셨는지 모르겠어요. 스태프들의 힘도 컸어요. 촬영 감독님과 김원석 PD님, 그 외에 소품팀이나 미술, 분장팀의 협업이 굉장히 잘 이루어졌죠."
정해균은 극중 이재한을 연기한 조진웅, 김범주를 연기한 장현성과 가장 많이 부딪히고 연기했다. 워낙 배우로서 에너지가 강한 배우들이었기에 얻어갈 수 있었던 것도 많았다.
"조진웅, 장현성 배우의 연기가 대단한 건 본인의 연기가 아닐 때도 그대로 해준다는 것이에요. 본인의 장면이 아님에도 90% 가까이 감정을 전달해줘요. 저는 그걸 그대로 받으면서 연기하니까 정말 좋았죠. 이분들의 연기를 보면서 정말 허투루 저 자리까지 간 게 아니구나를 느꼈어요. 또 '시그널' 같은 현장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서울예술대학 연극과를 졸업해 연극, 영화, 드라마 가리지 않고 연기를 해온 정해균은 이번 '시그널'을 만나 대중들에게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시청자들의 공감을 많이 얻은 만큼 그의 연기력은 인정받았다. 하지만 더 좋은 작품으로 대중들과 만나고 싶은 욕심은 커지고 있었다.
"'시그널'이라는 작품을 하게 돼서 정말 감사해요. 큰 전환점을 맞이한 기분이에요. 요즘도 가끔 생각나면 소름 돋고 뭉클할 때가 많아요. 이런 좋은 작품을 또 하고 싶어요. 좋은 작품이어야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좋은 작품이 사랑을 받아야 배우들도 좋은 연기를 할 수 있고 좋은 환경이 조성되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시그널' 시청자들에게 더욱 고마워요."
배우 정해균/사진=조준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