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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그들이 왔을 때

[칼럼] 그들이 왔을 때

기사승인 2016. 02. 22.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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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변호사 사진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고문
“처음에 나치는 공산당원을 찾아왔다./ 그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므로./ 다음에 나치는 사회주의자를 덮쳤다./ 그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그 다음에 나치는 노동조합원을 잡아갔다./ 그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므로./ 어느 날 나치는 유대인들을 끌고 갔다./ 그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그리고 나치는 가톨릭신자들에게 다가왔다./ 그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가톨릭신자가 아니었으므로./ 마침내 나치가 나에게 찾아왔을 때/ 나를 위해 나서줄 사람은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치 독재에 저항하다 투옥된 독일 개혁교회 목사 마르틴 니묄러의 ‘그들이 처음 왔을 때’라는 글이다. 나치 만행에 대한 독일국민의 무저항·무관심을 안타까워한 이 탄식의 글은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하면 그 고통이 곧 자신의 것이 되어 돌아온다는 두려운 의미를 담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패배 후 극심한 경제공황과 무질서상태의 확산으로 실의에 빠져있던 독일사회는 게르만민족의 영광을 외치는 히틀러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 니묄러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치가 침략전쟁을 벌이고 유대인 학살을 감행하면서 그 사악한 실체를 드러내자 니묄러는 반나치 운동의 선두에 나선다.

칸트와 헤겔을 낳은 철학의 본고장 독일이 나치의 만행에 눈을 감고, 르네상스의 예술혼과 인문정신을 빚어낸 이탈리아가 파시즘의 독재에 몸을 움츠린 광기의 시절, 로마 교황청마저도 아우슈비츠의 비극을 못 본 체 했다. 아우슈비츠의 고통을 외면한 채 나치와의 화해·협력을 부르짖은 독일 정치인 디트리히 에카르트, 나치사상의 대변자 노릇을 한 인종학자 알프레드 로젠베르크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준엄했다. 독일이 패전한 뒤 에카르트는 알콜 중독으로, 로젠베르크는 교수형으로 죽었다. 니묄러의 시처럼, 그들을 위해 나서줄 사람은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인간성을 말살한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나치시대의 독일에만 있었던 구닥다리 흉물이 아니다. 21세기의 지구촌에서도 처참한 인간성 파괴의 현장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1인 장기독재로 악명 높은 벨로루시, 다르푸르 인종 대학살로 생지옥이 된 수단, 고질적 군벌정치로 민생이 도탄에 빠진 소말리아, 인질 참수와 무차별 테러를 거듭하고 있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IS의 점령지역 등은 공포와 죽음의 동토(凍土)로 변했다. 특히 IS의 포악성은 아들이 친어머니를 공개처형하는 천인공노할 패륜범죄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테러 대상국에 한국도 포함돼 있다고 공언하는 IS의 위협 앞에서 그 피해자들의 고통을 더 이상 남의 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니, 그보다 더 절실한 고통이 우리 곁에 있다. 6개 정치범수용소와 십여 개 강제노동수용소에 약 20만 명이 감금돼 있다는 문명의 이방지대, 최고 존엄 3대에 걸쳐 광신적 우상숭배를 이어가는 21세기의 디스토피아, 국제적 인권단체 프리덤 하우스가 ‘세계 최악의 인권탄압국’으로 꼽은 북한의 주민들이 겪는 고통이다. 북녘 땅 전 지역이 거대한 감옥이나 다름없다.

북한 당국은 식량난의 실상을 축소·은폐해 오고 있지만, 탈북자나 국제구호단체들이 전하는 북한 주민의 민생현실과 인권상항은 참혹하다 못해 절망적이다. 유니세프는 북한의 곡물 생산량이 매년 큰 폭으로 줄어 끼니를 거르는 여성과 어린이들의 영양 상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밝히면서, 북한 어린이 2만5000명이 즉각적인 치료가 필요한 영양실조에 빠져있다고 경고했다. 자립능력이 없는 유아와 노인의 사망률은 전체 사망자의 74%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에 성공한 북의 핵탄두는 대한민국 국민만을 노리지 않는다. 북한 주민들 역시 핵무장한 선군(先軍)의 노예가 되어 빈곤과 억압을 강요당하고 있다. 북핵의 인질이 된 남북 동포의 고통에 눈감은 채 낡은 녹음기처럼 화해·협력만을 외치는 햇볕론자들, 우리 정부의 북핵 폐기 노력에 ‘전쟁을 하자는 것이냐’고 역정을 내는 평화주의자(?)들에게 묻는다. 핵공포가 현실로 다가왔을 때, 그대들을 위해 나서줄 사람이 남아있으리라고 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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