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한국의 儒商] 義로써 利를 취하고, 利로써 세상을 구한다…자공의 기업가정신 벤치마킹

[한국의 儒商] 義로써 利를 취하고, 利로써 세상을 구한다…자공의 기업가정신 벤치마킹

기사승인 2016. 02. 05. 15:48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한국의 유상 그들은 누구인가<2>
쌀 때 사고 비쌀 대 파는 투자 예측력으로 번 재산 유학사상 전파에 큰 기여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 대성전에서 석전대제(釋奠大祭)가 봉행되고 있다. 석전대제는 성균관과 전국 234개 향교에서 공자를 비롯한 오성(五聖) 등에게 지내는 제례의식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된 성균관의 주요 행사다. 자공의 위패는 공자 뒤편에 봉인되어 있다./ 연합

1978부터 2009년까지 신조어를 수록한 중한신조어사전(中漢新造語辭典)에 유상이란 용어가 등장하는데 용례로 1995년9월29일 인민일보에 수록된 '유상'을 들고 있다. 중국은 1980년부터 정부주도 개혁개방정책으로 급속한 경제성장에 시동을 걸지만 동시에 부패와 빈부격차 현상도 나타났다. 이에 전 중국공산당 총서기 강택민은 유가(儒家)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로부터 덕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계획을 제안한다. 당시 중국에서는 유학열풍이 불고 ‘유가의 도덕관과 가치를 추구하는 상인으로서 성공한 사람을 뜻하는 유상이라는 용어도 탄생했다.


2001년 10월 14일 중국공산당 중앙은《공민도덕건설 실시강요》를 발표하는데 기본 도덕규범은 "애국수법(愛國守法), 명예성신(明禮誠信), 단결우선(團结友善), 근검자강(勤儉自强), 경업봉헌(敬業奉獻)"의 24자이다. 이는 유가사상의 맥을 이은 것이다. 유상들의 문화를 공민도덕건설의 중요한 요소로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에서는 기업가와 학자로 구성된 유상협의회, 중국유상문화연구원과 중국유상경제연구원 등을 중심으로 공자의 제자이면서 상인인 자공(子貢)을 유상의 조상으로 간주하고 명・청시대의 진상(晉商ㆍ산서성 지역 상인)과 휘상(徽商ㆍ휘주 지역 상인)에 대해 활발히 연구하고 유상문화의 전파에 노력하고 있다.



자공 초상화 / 제공= 중국바이두

자공(子貢ㆍ사진ㆍ520~456 B.C.)은 공자보다 31세 아래의 춘추시대 위(衛)나라 사람으로 성은 단목(端木), 이름은 사(賜)다. 자공은 그의 자字다. 공자의 뛰어난 제자 10철(十哲) 중 한 사람으로 언변과 시세를 보는 통찰력이 뛰어나 상업으로 수천금의 재산을 모았다. 공자는 그를 종묘 제사에 쓰는 그릇인 호련(瑚璉)이라고 했다. 천하의 정치를 할 만한 인재로서 어디에 추천해도 쓰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사리에 밝고, 학문을 좋아해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알았다. 제(齊)나라가 노나라를 정벌코자 할 때 공자는 여러 제자들 중 자공을 택해 노나라를 구하고자 했다. 자공은 제(齊), 오(吳), 진(晉), 월(越) 등 여러 나라에 가서 군왕들을 설득했는데 오나라로 하여금 제나라를 공격케 함으로써 제가 노를 칠 수 없게 했다.



공자가 죽자 제자들은 3년 시묘侍墓를 하고 헤어졌는데 유독 자공은 6년 시묘를 했다. 자공은 논어에 그 이름이 36회 나타나는데 이는 38회 등장하는 안회(顔回) 다음이다. 그만큼 공자가 아꼈던 애제자였다. 공자는 안회와 자공을 이렇게 평가했다. “안회(顔回)는 도에 가까웠으나 자주 궁핍했고, 자공은 하늘의 명命을 받지 않고도 장사로 재물을 늘였는데 예측하면 자주 적중했다.(子曰回也其庶乎, 屢空, 賜不受命而貨殖焉, 億則屢中)"《「論語」 「先進」》.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측은 모든 기업가적 성공의 기초다. 안회는 안빈낙도했지만, 자공은 사물의 이치를 헤아려 많은 것을 적중시켜 수천금을 모았다. 교묘한 수단으로 법을 악용해 부자가 된 게 아니라 기업가적 판단력으로 상인으로 성공했다. 그는 조(曺)나라와 노(魯)나라 사이에서 값이 쌀 때 물건을 사서 값이 비쌀 때 팔아 공자의 70제자 중 가장 부유했다.
 
자공이 “가난해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해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떠합니까?”라고 묻자 공자가 답했다. “괜찮다. 하지만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며,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 못 하다.(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논어」,「학이」》. 가난해도 비굴하게 아첨하지 않고, 부자로 살아도 교만하지 않아야 비로소 자기를 지킬 수 있다.


그는 사두마차를 타고 기마행렬들을 거느리며 비단 묶음과 귀중한 예물을 가지고 제후들을 방문했다. 군왕들은 주인과 빈객의 예를 다해 그를 맞았다. 사마천은 이렇게 평했다. "공자의 이름이 널리 천하에 알려지게 된 것은 자공이 음으로 양으로 공자를 도운 결과다. 이것이야말로 세력을 얻어 세상에 더욱 드러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夫使孔子名布揚於天下者 子貢先後之也 此所謂得勢而益彰者乎?)"《「사기」,「화식열전」》.


자공은 명석한 판단력으로 수천금의 재산을 모은 부자였지만, 예를 좋아 했으며 그 재산으로 공자를 도와 유학을 세상에 떨치게 한 유상이었다. 자공은 '의(義)로써 이를 취하고, 이(利)로써 세상을 구한다(以義取利, 以利濟世)'는 유상의 이념을 실천한 사람이다. 자공은 유상의 시조이면서 현대 상인의 본보기임에 틀림없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 소재 문묘 대성전에서 봄·가을 공자에게 지내는 제사인 석전(釋奠)이 봉행되고 있는데 자공의 위패가 공자 뒤편에 봉안되어 있다. / 글 = 이제홍 태성회계법인 회장



이제홍 태성회계법인 회장은
1947년 3월 6일생(본관 : 경주, 경북안동인)
△학력 
1965년 안동농림고등학교 졸업 / 2014년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 수료(중국사전공)
△경력 
1969년 공인회계사시험합격(공인회계사) / 1971년 제10회 행정고등고시 합격 / 1989년 대통령비서실 사정비서관 / 1991년 서울지방국세청 조사2국장 / 1996년 국세청 부산지방국세청장 / 2005년 한영회계법인(Ernest & Young) 회장 / 2012년~태성회계법인 회장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