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현지시간) 터키 도안통신과 영국 일간지 가디언, AP 통신 등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다가 귀국하는 길에 대통령제 전환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나치 독재자인 아돌프 히틀러를 거론했다.
그는 연방제 국가가 아닌 중앙집권형 단일국가인 터키에서 현 체제를 유지하면서 대통령제로 전환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히틀러의 독일을 보라”고 말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단일국가 체제에서 대통령제가 가능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 사례는 세계 각국에 있고 과거에도 존재했다”면서 “히틀러의 독일에서도 볼 수 있고 그 이후 다른 여러 나라에도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는 또 대통령제에서 중요한 것은 국민의 뜻이라며 “국민이 바라는 정의를 제공한다면 (대통령제 전환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발언은 헌법 개정을 통해 터키를 총리가 실권을 쥔 의원내각제에서 미국이나 프랑스, 러시아와 같은 대통령제로 전환, 대통령을 최고 행정수반으로 삼자는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발언은 서방 언론 등 외신을 통해 보도되며 논란을 불러왔다.
주요 외신들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히틀러를 언급한 사실을 앞다퉈 전하면서 장기간 총리직을 역임하고 대통령이 된 그가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통해 권력 확대를 꾀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터키 대통령실은 이에 성명을 내고 에르도안 대통령의 ‘히틀러’ 발언이 대통령제의 부정적인 사례를 지적하고자 한 것이라며 논란을 잠재우려 했다.
대통령실은 성명에서 “의원내각제든 대통령제든 제도가 오용되면 나쁜 통치로 이어진다”면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히틀러 독일을 긍정적인 사례로 언급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11년간 총리를 지낸 뒤 2014년 8월 사상 첫 직선제 대선에서 당선된 에르도안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했기 때문에 터키가 사실상 대통령제로 전환됐다면서 터키의 발전을 위해 효율적인 대통령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해왔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창당한 집권 정의개발당(AKP)도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승리한 뒤 대통령제 전환을 위한 개헌을 주요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은 1980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가 개정한 현행 헌법을 보다 민주적으로 바꾸자는 차원에서 정의개발당의 개헌 제안에 동의했지만 내각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케말 크르츠다로울루 공화인민당 대표는 이날 일간 줌후리예트와의 인터뷰에서 권력분립과 법치주의를 강조하면서 “터키는 200년 전통의 의원내각제를 강화해야 한다”며 대통령제 개헌에 반대했다.
터키는 2007년 대선 직선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정의개발당의 헌법 개정안을 국민투표에 부쳐 찬성 67%로 통과시켰으나 내각제는 바뀌지 않았다.
집권 정의개발당은 지난 총선에서 전체 의석 550석 가운데 317석을 얻어 단독 정권을 수립했지만 개헌안을 마련해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는 5분의 3석(330석) 확보에는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