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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투더패션] 아디다스와 푸마가 형제라구요?

[백투더패션] 아디다스와 푸마가 형제라구요?

기사승인 2015. 09. 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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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 다슬러
아디 다슬러의 모습./제공=아디다스
1920년, 과묵한 20세 청년 아디 다슬러는 가죽과 접착제 냄새가 진동하는 작업실에 홀로 앉아 고민에 빠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가볍고 육상선수에게 어울리는 신발을 만들 수 있을까?’

반면 외향적인 그의 형 루돌프 다슬러는 동생이 만든 신발을 팔 방법을 궁리했습니다. 루돌프는 독일을 휩쓸었던 경제 위기에도 척척 주문을 따내며 아디가 공들여 만든 신발을 돈으로 바꾸어 놓았지요.

1924년 7월 1일, 다슬러 형제는 정식으로 회사를 설립하고 ‘다슬러 형제의 신발공장’은 운동화 역사의 한페이지를 써내려갈 채비를 마칩니다.

이쯤 되면 눈치를 챘겠지요. 두 형제의 손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지금의 ‘아디다스’입니다.

다슬러 형제의 사업은 제품력과 정치적 상황이라는 톱니바퀴가 맞물리며 황금기를 맞게 됩니다. 1933년 히틀러는 스포츠가 규율이나 전우애 같은 군사적 미덕을 함양하는 데 적합한 도구라고 생각했고 스포츠 진흥을 시급한 목표로 설정했습니다. 그러면서 스포츠화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다슬러 형제는 돈을 긁어 모았지요.

전문 스포츠 브랜드로서의 명성도 쌓았습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전설적인 육상선수 제시 오언스가 그들의 신발을 신고 대회 4관왕을 달성하며 제품력을 널리 알렸지요.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형제는 사업권을 둘러싼 갈등에 직면하고 결국 갈라서게 됩니다. 루돌프 다슬러는 1948년 회사를 떠나 ‘푸마’를 설립하고 아디 다슬러는 회사명을 자신의 이름을 딴 ‘아디다스’로 바꿨습니다.

아디다스 푸마 로고
아디다스(왼쪽)와 푸마 로고
형제뿐 아니라 아디의 아들 호르스트와 루돌프의 아들 아르민 역시 경영수업을 받으며 2세끼리도 치열한 시장 쟁탈전을 펼쳤지요. 결국 아디다스와 푸마는 날로 번창해갔지만 한번 갈라선 형제는 루돌프가 1974년, 아디가 1979년 사망할 때까지도 끝내 화해하지 못했습니다.

적수가 없었던 아디다스는 아디의 아들 호르스트가 스포츠 정치에 몰두한 사이 점차 경쟁력을 잃어갔습니다. 대중의 취향 변화에 둔감해졌고 인건비가 높은 독일과 프랑스 공장의 이익률은 추락했습니다. 나이키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맹위를 떨친 것도 이 시기지요.

이후 호르스트가 갑자기 사망하고 아르민 역시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서 아디다스와 푸마는 다슬러 가문의 손을 떠나 매각됐습니다. 결국 1992년 1억5000만마르크의 적자를 내던 아디다스는 이후 다른 이의 손에서 4년 만에 재기에 성공했지요.

박성은
박성은 생활과학부 기자
판매와 관리에 능숙했던 루돌프와 기술이 뛰어났던 아디. 이들이 갈등 대신 서로가 가진 힘을 합했다면 다슬러 가문이 현재까지도 운동화의 역사를 써내려갔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디다스의 3선은 가죽신발이 늘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신발끈을 3번 둘러 묶은 모습에서 착안됐습니다. 디자인이 아닌 기능적인 요소에서 탄생한 3선은 1949년 상표로 등록됐고, 곧 아디다스의 트레이드마크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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