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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인간과 삶에 관한 밀도 높은 해석” 연극 ‘아버지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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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15. 09. 03. 16:47

투르게네프 원작 극적이면서도 쉽게 그려내...'명품' 배우들 호연 돋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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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의 연극 ‘아버지와 아들’ 중 한 장면./제공=국립극단
니힐리스트(nihilist·허무주의자) 바자로프는 ‘나쁜 남자’다.

의대생인 그는 예술·철학·종교 그리고 모든 권위를 부정한다. 심지어는 사랑조차도 부정한다. 여자와의 관계는 내키면 ‘자는 것’이 전부다. 그는 오로지 혁명을 꿈꾼다. 그에게 있어 인간 사이의 ‘관계’나 ‘따뜻함’은 중요하지 않다.

그런 그가 자기 덫에 걸려든다. 늙은 귀족과 결혼해 부자가 된 신흥 자본가 안나를 사랑하게 된 것. 그리고 그 사랑은 육체적 관계 한 번 없었지만 무엇보다도 뜨거웠다.

2일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 국립극단의 연극 ‘아버지와 아들’에서 바자로프는 그런 사람이었다. 바자로프 역의 배우 윤정섭은 상당히 지적인 동시에 콤플렉스가 많은 캐릭터를 아주 매력적으로 구현해냈다. 이성열 연출의 표현대로 그는 “차가움과 뜨거움이 공존”하는 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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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의 연극 ‘아버지와 아들’ 중 한 장면./제공=국립극단
특히 이 작품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장면은 바자로프의 죽음 후 그의 부모가 슬픔에 못 이겨 하는 대목이었다. 촌스럽고 보수적이지만 아들에 대한 사랑은 그 누구보다 강한 아버지 바실리, 그는 아들에게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우리네 아버지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맛깔나게 긴 대사를 소화해내는 원로배우 오영수는 상실의 슬픔을 토해내며 관객의 폐부를 찌른다.

바자로프의 어머니 아리나(박혜진)는 아들이 살아있을 때 함께 불렀던 찬송가 ‘테 데움 라우다무스(Te Deum laudamus)’를 소름 끼치게 부른다. ‘당신을 주로 찬양하고 받들다’는 뜻으로, 주로 축제 때 감사의 노래로 불리는 이 곡은 절대적 아름다움과 동시에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한없는 슬픔을 한꺼번에 전했다. 어머니의 노래 뒤로 죽은 바자로프가 문을 건너는 장면 또한 연극에서만 볼 수 있는 좋은 연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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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의 연극 ‘아버지와 아들’ 중 한 장면./제공=국립극단
이번 작품은 러시아 대문호 이반 투르게네프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아버지와 아들’을 ‘아일랜드의 체홉’으로 불리는 브라이언 프리엘이 각색하고, 체홉의 현대적 재해석에 일가견을 보인다고 평가받는 이성열이 연출했다.

이번 연극은 무엇보다도 명작을 편안하고 쉽게 전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했다. 너무 지적인 대사들이 남발해, 관객들로 하여금 ‘이해불가’의 지루함에 빠지게 하는 고전 소재 연극들에 비해, 이 작품은 원작을 모르는 관객이라도 쉽게 드라마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아울러 이 연극을 살린 일등 공신은 바로 ‘명품’ 배우들에게 있었다.

일하지 않고 책이나 읽으며 세월을 보내는 이상적 자유주의자 빠벨을 연기한 남명렬은 조금의 더함도 덜함도 없는 정확한 연기로 극의 묘미를 살렸다. 제50회 동아연극상 연기상, 제6회 대한민국연극대상 최우수연기상 등 무수한 수상경력에 빛나는 남명렬은 연극·드라마·영화를 오가며 탄탄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설명이 필요 없는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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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의 연극 ‘아버지와 아들’ 중 한 장면./제공=국립극단
또한 바자로프가 사랑하는 그녀이자 똑똑하고 매력적인 여지주 안나 역의 김호정은 임권택 감독 영화 ‘화장’으로 올해 백상예술대상 여우조연상을 거머쥔 연기파. 이번 무대에서도 그녀는 단단한 카리스마로 관객을 끌어당긴다.

이밖에도 유연수 이명행 최원정 이정미 조재원 등 출연한 모든 배우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훌륭한 연기를 선보인다.

연극은 휴식시간 15분을 포함해 총 170분이라는 다소 긴 러닝타임이지만,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다. 인간과 삶에 대한 묘사가 그만큼 밀도 있게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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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의 연극 ‘아버지와 아들’ 중 한 장면./제공=국립극단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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