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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뼛속뿐 아니라 외적으로도 뷰티 전문가다운 이미지를 풍겨야만 진정한 스페셜리스트라 말할 수 있고 자신의 고객을, 후배를 당당하게 코치할 수 있어요. 솔직히 선천적인 것도 있죠.” 헉, 이게 아닌데. 그의 입에서 ‘노력하면 누구나 된다’는 답을 기대한 터였다. 하지만 이어지는 반전(反轉). “그런데 타고난 재질이나 끼도 중요하지만 열심히 갈고닦아 고수가 될 때도 많죠.”
그랬다. 진 대표는 부단한 노력과 끈기로 여성의 고유 직업으로만 인식되던 미용 업계에서 30여 년 가까이 쌓은 실력을 인정받아 국내 정상급 패션모델의 헤어스타일을 연출한 경력을 갖고 있는 남성 헤어디자이너다. 그렇게 응축된 전문성을 발판으로 40대인 지금, 뷰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인생 2막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진 대표는 “갈수록 뷰티 산업이 커지는 상황”이라며 “이제는 단순한 뷰티 아이템이 아니라 이 아이템에 기획력을 더한 브랜드화가 글로벌 뷰티 시장의 성패를 판가름하는 ‘기획력’의 시대”라고 말했다. 그는 이 기획력으로 ‘K-뷰티(미용 한류)’ 시장에서 승부하겠다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노력 이기는 재능은 없어
그의 원래 꿈은 건축디자이너. 당시 관련 공부를 할 수 있는 학원이 국내엔 없었고, 집안 형편상 유학은 엄두도 못 냈단다. 진 대표가 헤어디자인의 세계에 입문한 계기는 순전히 우연이었다. 20대 때 호기심 삼아 들른 한 미용학원 상담 관계자의 말에 넘어가 학원을 다니게 되면서 얼떨결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하지만 배울수록 현란한 가위질이 빚어내는 무한한 창조적 감동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창조적인 작업을 좋아했다. 특히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개성과 감성을 발휘할 수 있는 헤어디자인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회고했다. “당시는 남자가 미용을 한다는 것에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때였죠. 남자 미용사를 잘 써주지도 않았고요. 부모님 반대가 심할 것을 우려해 집에는 디자인학원을 다닌다고 거짓말하고 미용 일을 배웠어요. 성공해야 제 일에 대해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을 테니, 정말 절실한 심정으로 악착같이 공부했죠.”
부지런함과 피나는 연습은 기본, 여기에 적극성으로 밀어붙였다. 기술은 좀 부족해도 ‘해 보겠다’는 의사를 강하게 표현했고 모자란 기술적 부분은 손톱 매니큐어 서비스 등 남들이 하지 않는 무료 고객 서비스로 채웠다. 그런 노력의 결과, 보조 스태프 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 당시 헤어디자이너로 성장하기까지 소요되는 기간은 평균 5년인 데 반해 그는 3년이 걸렸다.
헤어디자이너가 된 이후에도 뷰티에 대한 배움의 열정과 고객 만족 서비스를 향한 그의 ‘남다른’ 노력은 계속됐다. 틈틈이 분장학원에서 배운 기술로 메이크업 서비스를 제공했고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눈썹 손질법을 카운슬링했다. 심지어 5개월치 월급을 가불받아 고객심리학 강의까지 들었다.
진 대표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만큼 미용 업계의 발전을 한 단계 앞당기겠다는 생각도 강했다”고 말했다. 그의 의욕적인 에너지는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활약상으로 나타났다. 서울패션위크·프레타포르테 패션쇼·APEC 정상회담장 톱모델 패션쇼·샤넬쇼 등에서 수많은 모델의 헤어를 연출했으며 중국에도 진출, 학원 강의·펌 약 제조·유통사업과 함께 헤어스타일 상담 등 미용 연구에도 전념했다.
수년간 미용 제품 개발에도 몰두해 신기술 붙임머리 제품·특수 사이즈 웨이브 만들기가 가능한 신개념 펌 장치 등을 만들어 다수 특허출원했다. 업계도 인정한 진 대표의 ‘창조+노력 본능’은 자연스럽게 또 다른 도전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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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대표는 K-뷰티 시장의 무한한 가능성에 주목했다. “아시아에서 한국 뷰티 시장은 글로벌 기업들의 중요한 시험무대가 되고 있어요. 아시아 시장에서 한국 소비자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한국인은 미국·유럽·일본 등 해외 뷰티 트렌드를 받아들여 재해석하고 창조해내는 능력이 뛰어나죠. K-뷰티가 해외 시장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그 성공 여부는 K-뷰티를 제대로 브랜드화 할 수 있는 기획력에 달렸다는 게 진 대표의 설명이다. 기업에는 기획 전문가가 있지만 손기술이 주가 되는 미용사에겐 기획력이 부족한 게 현실이란다. 그는 이런 틈새를 공략, 자신의 오랜 공력에 기반한 기획력을 무기로 뷰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활동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뷰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그가 하는 일은 패션쇼·미인대회·모델대회·방송 및 화보촬영의 처음부터 끝까지 뷰티 스타일링과 행사 전반 디렉팅을 담당하는 것. 지난 5월 디자이너 이상봉·장광효 등이 참여한 ‘2015 경기니트 컬래버레이션 패션쇼’와 대구섬유박물관 개관 기념 패션쇼의 뷰티를, 7월에는 ‘인디브랜드페어 2015’의 뷰티를 맡았다. 이달에는 한국 최초 로마컬렉션 진출 모델대회로 알려진 ‘더 룩 오브 더 이어 한국모델선발대회’의 뷰티를 담당하고 심사도 진행했다.
진 대표는 헤어·메이크업 전문가들로 구성된 아시아뷰티트렌드연구소 팀과 함께 움직이며 △패션쇼·미인대회 헤어쇼·화보촬영 작업 △화장품 회사들과 신제품 연구개발 및 브랜드 론칭·홍보 △국내외 미용 강의 및 뷰티 정보 교류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을 아름답게 그래서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라고 느낄 때 보람을 느낀다는 그.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제 롤 모델이 비달사순이에요. 가위 하나로 여성 헤어스타일의 혁명을 불러온 세계적 헤어디자이너면서 자신의 브랜드를 세계에 널리 알린 사람이죠. 죽은 뒤에도 미용인들에게 존경받고 있어요. 뷰티 한류도 이렇게 브랜드로 만들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진 대표는 자체 개발한 ‘마지아’ 브랜드의 헤어 제품 출시를 준비 중이며 마지아를 한국의, 아시아의 대표적인 뷰티 브랜드로 키워나간다는 구상이다. 뷰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일을 ‘창직’으로 발전시키고 싶은 포부도 내비쳤다. “부단한 노력과 연마가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전문성만 확고하다면 일하는 데 나이는 상관없는 시대가 왔다고 봅니다. 뷰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새로운 직업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일조하고 싶어요.”
80살까지 무대에 서고 싶고 죽을 때까지 뷰티 일을 하고 싶다는 그는 인터뷰 말미에 정확한 나이를 밝히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진 대표는 “나이를 잊어버릴 만큼 열정적으로 살고 있는 뷰티 전문가의 이야기 그 자체로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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