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콴유는 싱가포르의 1세대 정치인으로 영국으로부터 주권을 넘겨받고 말레이시아와의 합병·독립을 주도했다.
그가 총리로 취임하던 당시, 싱가포르의 최대 목표는 ‘생존’이었다.
부족한 자원과 생산시설. 섬 국가인 싱가포르는 식수가 부족해 인근의 말레이시아에서 물을 수입해야하는 실정이었다.
중국계-말레이계-인도계의 인종 갈등은 끊이지 않았으며 외적으로는 공상주의 이념의 도전이 계속됐다.
이런 어려운 여건 속에 국가 지도자의 중책을 맡은 리콴유는 명확한 목표를 제시했다.
그의 눈에는 싱가포르를 국제사회의 물류 중심지로 세우겠다는 비전이 보였다. 세계의 물류가 이동하는 말라카 해협에 위치하고 있다는 싱가포르의 유일한 강점을 살리자는 것이었다.
리콴유의 지휘 아래 싱가포르는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그 결과, 싱가포르는 물류를 기반으로 아시아의 금융허브로 성장했으며, IT와 BT 등 첨단 기술의 발전소로 거듭났다.
이 같은 성과는 리콴유의 통찰력과 실행력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공직자들의 부패는 국가 발전의 최대 장애물이라는 가치관 아래 강력한 부패방지책을 편 것은 리콴유가 얼마나 철두철미한 사람이었는지를 대번에 보여주는 대목이다.
헨리 키신저는 이런 리콴유를 ‘작은 무대 위에 선 거인(A big man on a small stage)’라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리콴유는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를 내세워 반박한다. ‘문화적으로 서구와 다른 아시아가 서구식 민주주의를 채택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싱가포르의 국민들이 리콴유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일까. 역대 선거에서 집권여당인 인민행동당이 패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패배는 말할 것도 없이 인민행동당은 매번 선거마다 의석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장기 집권 체제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싱가포르 내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엔 대규모 폭동 등 무력 시위의 발생도 잦아지고 있다. 강력한 공권력을 내세워 치안을 유지해왔던 싱가포르 정부로선 당황스러울 법한 일이다.
이 같은 모습은 리콴유 사후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국부’로 추앙받으며 국민들에게 안정감을 줬던 인물이 사라지면서 그동안 억눌러왔던 정부에 대한 불만이 폭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다.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지역연구센터 연구위원은 2013년 싱가포르의 한 대학교수를 만나 “싱가포르의 애매한 민주주의는 리콴유가 살아있을 때까지만 유지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소개했다.
이 연구위원에 따르면 이 교수는 ‘좋든 싫든 국부로서 리콴유의 존재가 급격한 변화를 막고 있다’면서 “리콴유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크게 나타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