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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대표는 1990년초부터 20년 넘게 다양한 시도를 하며 피자 메뉴와 맛을 개발하는데 주력해 왔다. 그가 개발한 ‘뽕뜨락피자’는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주말드라마 ‘왕가네 식구들’에 나오면서 유명세를 입소문을 타고 있다. 드라마 속 왕돈 삼촌(배우 최대철 분)의 모델이 된 인물이 명 대표다.
◇피자 연구만 22년...아르바이트를 통해 피자와 인연 맺어
명 대표는 고등학교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피자와 인연을 맺었지만 “피자는 그저 배달하는 간식거리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그 후 군대 가기 전 서울에 올라와 지인의 소개로 호텔 주방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음식 조리사의 길로 들어섰다. 그 당시 조리사 자격증 등 음식에 관한 갖가지 자격증을 땄다.
군 제대 후 명 대표는 한 선배와 함께 중소기업 피자전문점에 취업해 피자 개발에 참여한다. 그 당시 외식업계에 9900원 피자 열풍이 휘몰아치면서 창업 시장의 핫 아이템으로 떠오르자 명 대표도 1992년 회사를 떠나 창업을 결심하게 됐다.
“서울 양평동 한옥집에서 창업을 했습니다. 돈도 넉넉하지 않던 시절이라 피자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오븐조차 낡은 제품을 구입했을 정도로 힘겨웠습니다. 더군다나 한옥집이라 음식점 허가가 안 나온다는 걸 오픈 준비를 마치고서야 알게 됐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시련이었지요.”
명 대표는 어쩔 수 없이 지인에게 돈을 빌려 아파트 지하상가로 이전하는 우여곡절을 겪었고, 그나마도 경험부족으로 근근이 입에 풀칠을 할 정도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장마철에는 하루에 여섯판밖에 팔지 못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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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문을 닫을까 고민하던 명 대표는 우선 장마철 배달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당시 대형 피자집들만 사용하던 배달통을 구매했다. 또 홍보를 위해 전화번호와 피자가격만 적힌 전단지를 제작했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고 싶었던 명 대표는 전단지 붙일 공간을 계속 고민했다. 몇 날 며칠 잠을 못 이루던 명 대표는 새벽 4시에 인근 아파트를 찾게 됐다. 아파트를 한 바퀴 돌다 보니 우유를 배달하는 아줌마들이 보였고 좀 더 살펴보니 우유를 놓는 구멍이 있었다. 명 대표는 그 다음날부터 우유 배달 아줌마들과 같이 전단지를 우유 구멍에 넣기 시작했다.
절반의 성공은 거뒀다. 평소보다 많은 주문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하지만 종이가 작으니 손님들의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이에 명 대표는 초인종에 전단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초인종에 붙이니 항의전화가 오기 시작했죠. 하지만 항의전화를 받으면서 웃을 수 있었죠. 전화가 온다는 건 곧 전단지를 봤다는 이야기이니까요.”
그 후 명 대표는 문 손잡이에 전단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이것이 ‘신의 한수’였다. 주말에 1000판을 팔게 된 것이다. 하지만 배달 직원이 교통사고로 크게 다치면서 명 대표는 더 이상 배달을 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피자가게를 다른 사람에게 팔았다. 명 대표의 인생에 또다른 고비였다
◇다시 뛴다...뽕잎 이용한 피자개발
자포자기했던 명 대표는 우연히 웰빙 열풍에 대한 언론보도를 접한 뒤 무릎을 쳤다. “피자에 웰빙을 입히자.” 명 대표는 웰빙 바람을 타며 인기를 모은 곡물피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뽕잎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박람회를 나가면서 시식행사를 펼쳤는데 씁쓸한 맛 때문에 호불호가 갈렸습니다. 씁쓸한 맛을 제거해야 성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수차례 시행착오 끝에 탄생한 피자가 바로 ‘뽕뜨락 피자’다. 뽕뜨락피자의 이름은 뽕잎의 ‘뽕’과 마당이란 뜻을 가진 순 우리말 ‘뜨락’이라는 단어가 합쳐져 탄생됐다.
일반적인 피자의 밀가루 도우가 아니라 현재 특허출원 중인 뽕잎쌀(뽕잎+오디) 도우를 사용해 기름진 피자를 담백하고 소화가 잘되는 아이템으로 과감히 바꿨다. 인테리어 또한 뽕나무 농원을 함축시켜 표현했고 벽면은 친근한 애니메이션으로 꾸몄다.
이러한 담백한 맛과 인테리어가 뽕뜨락피자의 성공 요인이 됐으며 현재 전국에 300개 이상의 매장이 있다. 또한 중국에도 진출해 3개의 매장을 오픈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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