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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실크로드 동쪽 끝 경주 입증하는 대표적 유적
학계나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경주 일대에는 동서 문명 교류를 보여주는 많은 유적과 유물이 분포되어 있다. 경주가 실크로드의 동쪽 끝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적 중의 하나는 8세기 중엽에 조성된 석굴암이라고 할 수 있다.
석굴암은 돔형 천장의 원형 평면 주실과 방형의 전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건축 구조는 5~8세기에 다수 만들어진 아프카니스탄 바미얀의 원형당들과 매우 비슷한 모습이다. 특히 원형당의 지름과 높이가 같은 석굴암 돔형 건축구조의 기원은 AD 125년경에 조성된 로마의 판테온신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석굴암은 실크로드를 통해 경주에 유입된 로마·서역·중국의 문명이 우리의 전통문화와 융합되어 피어난 찬란한 문명교류의 꽃이라 할 수 있다.
경주가 실크로드의 동쪽 끝으로 활발하게 문명 교류를 하던 기간 중 주목되는 시기는 4~6세기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유물로 지중해 지역이나 유럽에서 제작된 상감유리·유리잔 등 유리제품들과 서아시아 및 북방계 문화의 영향을 받은 금관, 장식보검, 금속 공예품 등이 있다.
헬레니즘의 대표적인 공예의장인 뿔잔(각배角杯)은 한반도에서 경주일대에서만 출토되고 있다. 기와와 석조 및 토기 조각에서도 서역과 페르시아 계통의 문양과 인물상 등이 다수 확인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아랍의 무슬림을 비롯한 서역인들이 바닷길을 통해서도 경주에 직접 들어와 무역을 했고 아예 신라에 삶의 터를 잡고 정착하는 경우도 있었다.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신라는 알타이를 중심으로 동서에 형성된 찬란한 황금문화대의 동쪽 끝에서 ‘금관의 나라’로 전성기를 누렸다. 이 길을 타고 그리스-로마 문화의 상징인 비천상(飛天像)이나 다채장식기법, 각종 유리그릇과 뿔잔이 한반도에 들어왔다.
또 중세아랍상인들도 신라에서 11종의 물품을 수입했다. 또 석류나 대칭문양, 마상격구(Polo) 같은 페르시아 고유의 문화도 한반도에 전해졌다. 서역인의 한반도 정착을 시사하는 신라 경주 괴릉의 눈이 깊고 코가 높은 무인석상과 토용(土俑)도 이 길을 통한 인적왕래의 결과다.
그런가 하면 2000여년 전에 바닷길을 통해 인도 아유타국 공주(허왕후)와 가락국 김수로왕 사이에 첫 국제결혼이 이뤄졌다. 또 7세기 중엽 초원길을 거쳐 고구려 사절이 멀리 중앙아시아 사마르칸트까지 사신으로 간 바도 있다.
또 고구려의 후예인 당나라 장수 고선지는 시안에서 출발해 오아시스로의 가장 험난한 구간인 ‘세계의 지붕’ 파미르 고원을 넘나들면서 11년간(740년~751년) 5차례나 서역을 정벌했다. 이 정벌은 세계 전쟁사에 전례 없는 기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의 원정으로 중국의 제지술이 세계적으로 전파되었고 중앙아시아 보물들이 동아시아로 유입됐다.
그러나 지금까지 실크로드의 동쪽 끝은 일괄해서 중국으로 알려져 있었다. 또 실크로드 이전의 ‘초원의 길’의 동쪽 끝도 중국의 화북(華北)이고, 오아시스의 동쪽 끝은 시안, ‘바다의 길’ 동쪽 끝은 중국 동남해안으로 알려져 있다. 이대로라면 한반도는 실크로드에서 제외되어 세계와 무관한 ‘외딴 섬’이 되고 만다.
◇한반도, 고대부터 서역·북방계와 교류
하지만 앞서 기술했듯이 역사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한반도에서 발견된 여러 가지 서역이나 북방계 유물들, 그리고 내외의 관련 문헌 기록들은 일찍부터 한반도가 외부세계와 문명을 교류하고 인적왕래도 왕성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여러 가지 유물과 기록에서도 나오듯이 실크로드 3대 간선인 ‘초원의 길’, ‘오아시스로’, ‘바다의 길’ 동쪽 끝은 시안을 중심으로 한 중국에서 멎은 것이 아니라 한반도까지 이어졌다.
태고 때 바이칼호수를 중심으로 한 북방 초원지대에서 시원(始原)한 한무리의 조상들이 초원실크로드를 따라 남하해 한반도에 정착했던 것이다. 그래서 한민족은 오늘날까지 북방계 여러 민족과 체질인류학적으로 문화적으로 상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 종족별 DNA분석 자료에 따르면 바이칼 주변의 야쿠트인, 부랴트인, 아메리카 인디언, 한국인의 DNA가 거의 같다는 학계 연구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그 실례가 바로 ‘몽골반점’이다.
또 한국 무속의 원류는 시베리아의 샤머니즘이다. 이들 북방계 민족들과 한국인은 동물을 시조로 삼는 전통까지도 신통하게 일치한다. 이것이 초원실크로드를 통한 한민족의 북방계 뿌리라면 해상실크로드를 통한 남방계 뿌리도 한반도에는 남아있다.
한반도의 거석문화나 쌀 문화는 태양과 거석을 기리는 남방해양문화와 연결돼 있다. 베이징(北京)은 일찍부터 실크로드 오아시스로를 한반도에 이어주는 중간고리 역할을 했다. 기원 전인 중국의 전국시대에 베이징 근방에 도읍을 정한 연(燕)나라는 그 길의 동쪽 끝에 해당하는 ‘명도전로(明刀錢路)’를 통해 한반도와 교역을 했다.
연나라 화폐 명도전이 베이징으로부터 랴오둥 반도를 거쳐 한반도에 이르는 여러지역에서 출토되었는데 ‘명도전로’는 그 출토지들을 연결한 최초의 육지 한· 중 교역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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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시안에는 실크로드를 통해 오간 수많은 동서 문물과 우리 조상들의 흔적도 곳곳에 남아있다. 시 남쪽 20km 지점에 있는 흥교사에는 신라 왕손 출신 원측(圓測, 613~696년)을 기리는 ‘원측탑’이 세워져 있어 당시 당과 신라 사이에 불교를 통한 인적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옆에 인도를 다녀온 현장의 탑도 서 있어 원측이 현장에게서 불학을 익힌 수제자임을 알 수 있다.
당나라 전성기 수도 시안에는 최치원을 비롯한 신라 유학생이 800여명이나 됐다는 기록이 있다. 신라인들의 집단 거주지 ‘신라방’도 시안에 형성돼 있었다.
연중기획 ‘출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연재하고 있는 본지는 앞으로도 한반도와 세계를 연결하는 주요 루트를 직접 탐사하며 고대로부터 한민족이 ‘유라시아이니셔티브’를 쥐고 유라시아 대륙을 누빈 사실을 생생하게 보도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본지는 6월 22일부터 28일까지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국제세미나를 열어 한반도와 ‘초원의 길’이 이어졌음을 입증할 것이다. 또 8월 2일부터 12일까지 시베리아 횡단철도 기행을 통해 한반도와 이어진 ‘초원의 길’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보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