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는 1971년 12월 화교 참전용사 53명에게 종군기장을 수여하며 6·25 참전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아시아투데이 김종원 기자 = 6·25전쟁 당시 중화민국(대만) 국적을 가진 화교들이 참전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강혜림·위쉬팡 두 화교 참전용사가 국립서울현충원에 외국인으로서 유일하게 묻혀 있다는 사실도 아는 국민이 별로 없다.
1925년 태어난 강혜림 참전용사는 화교로서 평양에서 거주하다 전쟁이 발발한 1950년 국군 1사단 15연대 소속으로 종군해 적진 정찰과 포로 심문 임무를 수행했다. 51년 2월 경기 과천에서 전사했다.
전쟁이 끝난 59년 화랑무공훈장이 추서돼 64년 국무회의를 거쳐 국립서울현충원 24번 묘역에 안장됐다. 그의 전공을 길이 계승하기 위해 지난해 5월 위쉬팡 참전용사와 함께 외국인 묘소에 나란히 안장했다.
강 참전용사는 중화민국 대사관과 동료 전우들의 우리 군 묘지 안장을 요청해 64년 10월 국무회의에서 국립묘지 안장이 결정돼 부산 화교 소학교에 임시 안치했던 영현을 국립묘지로 옮겼다.
당시 국무회의에서는 ‘현행 법령(군묘지령)상 외국인 종군자에 대한 안장을 할 수 있는 명문 규정은 없지만 우리나라에 대한 그의 공로를 볼 때 도의상 거절할 수 없는 처지로서 중화민국 대사관 요청과 반공화교의 사기, 우방국 간의 유대강화를 위해 유공자 영현을 군 묘지로 안장해 우리 전몰용사와 동등한 대우를 하고자 한다’고 결정했다.
정부는 1973년 6·25전쟁 중화민국 화교(지금의 대만) 참전용사들에게 대한민국 대통령 이름으로 그 공을 기려 보국포장을 수여했다. 김육안 여한화교참전동지 승계 회장의 아버지인 김성정 씨가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포장증.
위 참전용사는 50년 10월 국군1사단 수색대에 입대해 평양 진격 때 화교 47명과 함께 첩보대원으로 참전했다. 수색과 첩보활동, 포로 심문의 혁혁한 공을 세워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정전 후에는 한의사로서 극빈 환자 무료 진료와 장학사업으로 우리 나라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89년 6월 25일 사망해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지난해 5월 강 참전용사의 묘를 위 참전용사 옆으로 옮겨 외국인 묘소로 해 그 규모를 대폭 넓혔다.
위 참전용사도 89년 국무회의에서 ‘대한민국에 공로가 현저한 외국인 사망자 중 국방부 장관의 제청에 의해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지정하는 자는 국립묘지에 안장할 수 있다’는 조항에 따라 국립서울현충원에 묻혔다.
강·위 참전용사처럼 200~300명의 화교 출신들은 주한 화교청년 S·C(Seoul China)지대 북파공작원(HID) 육군 4863부대원으로 적진 깊숙이 낙하 침투 하거나 전방 유격대원으로 첩보활동을 했다. 전쟁 초기 문산 월룡면과 서울 사직공원에서 10주간 교육훈련을 받고 지대 본부를 강화도 교동에 두고 임무를 수행했다.
12명이 1개조로 편성돼 국군 1사단, 6사단을 비롯해 동서부 전선 연백·해주 지성과 중부선전 철원·금화·평강 지구에서 수많은 유격정보 활동을 했다. 51년 3월에는 성천, 순천 지역의 적 후방에도 낙하산으로 낙하 정보수집 공작에 참가했다. 당시의 조장은 왕복양 참전용사로서 6명과 함께 낙하 침투해 첩보 활동을 했지만 끝내 전원 귀대하지 못했다.
중화민국 대만 국적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오중현 참전용사(앞줄 왼쪽 둘째)가 북파 공작원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 부대원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중화민국 대만 국적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화교 참전용사들.
화교 참전용사들은 전쟁 막판 치열한 정전협정 전투 상황에서도 중공군 적진 깊숙이 침투·잠입해 중요한 협상 정보와 작전 기밀을 획득해 큰 전공을 세웠다.
오중현(88) 화교 참전용사의 장남인 오대성씨(52·부산 수영구 남천동)는 “아버지와 가족들은 대한민국이 어려울 때 자발적으로 대한민국을 위해 싸웠다는 것에 대해 항상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면서 “하지만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국적까지 바꿔 가면서 국립묘지 안장을 택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자식으로서 잘한 일인지 서글프기만 하다”고 말했다. 장남인 오 씨와 밑에 두 남동생 모두는 아직도 대만 국적을 갖고 있다.
김성정 화교 참전용사의 아들로 화교참전동지회를 계승하고 있는 김육안 여한화교참전동지 승계회장은 24일 오후 지금이라도 화교 참전용사들의 국립묘지 안장과 공적비 건립, 의료 혜택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교참전동지회를 계승하고 있는 김육안 여한화교참전동지 승계회장(55·경기 의정부)은 “화교 참전용사들과 그 후손들은 국적을 바꾸면 국립묘지에 안장된다는 사실 조차도 모르고 있다”면서 “그나마 강·위 두 참전용사가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다는 것만으로도 화교 참전용사와 후손들의 큰 위안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화교 참전용사들과 그 후손들이 한국 정부와 국방부에게 조금이나마 참전에 대한 보상과 명예 회복을 원했지만 한국 국적이 아니다는 이유로 번번히 무시 당하고 거절 당했다”면서 “화교 참전용사들을 모집할 때 정부 간 금전이 오갔다고 하지만 참전용사들은 단 한 푼도 받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이분들의 마지막 소원인 군번없는 무명용사 공적비와 국립묘지 안장, 의료 혜택을 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정부는 화교로서 6·25전쟁에 참전한 강혜림·위쉬팡 두 참전용사를 대만 정부와 참전 동료 전우들의 요청을 받아 들여 국립서울현충원 외국인묘소에 안장했다. 국립서울현충원에는 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강·위 두 대만 참전용사와 함께 대한민국 독립운동을 지원한 영국계 캐나다인 프랭크 스코필드 전 연세대 교수가 안장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