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형 복지, 영국에서 길을 묻다 ⑦ 한인 주부 조문경씨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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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경씨가 영국 윔블던 한인교회 뒤뜰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사진= 영국 기획취재팀 |
런던(영국)/아시아투데이 김종원·이정필 기자 = “한국은 전 국민 무상 의료는 아니다. 하지만 영국 사람들은 개인이 좀더 부담하더라도 빠르고 수준 높은 한국의 의료서비스를 굉장히 부러워한다. 영국의 복지제도가 아니더라도 세계 여러 나라의 사례를 잘 연구해서 한국에 맞는 복지를 제도화했으면 한다.”
30년 넘게 영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 '액츄어리(보험계리인)' 조문경씨(47·여)는 영국이 복지제도에 있어서는 아무래도 역사와 제도가 앞선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적 복지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씨는 영국인들도 점차 복지를 정부 지원에만 의존하지 않고 개인 저축과 부담을 늘려 갈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보다 활동이 늘고 물가도 오르며 생활이 복잡해져 정부 지원만으로 충분치 않다는 얘기다.
전문 직장인이자 주부로서 실생활에서 피부로 느끼는 영국과 한국의 복지 차이를 들어보고 한국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물어봤다.
-영국은 연금제도가 잘 돼 있는데.
“영국 연금의 핵심은 일단 국민들이 굶어 죽게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어떤 국민도 어느 정도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정부에서 무상으로 기본 연금을 주고 세금을 많이 낸 사람은 더 주고, 또 개인 연금을 들 수도 있다. 정부는 연금과 각종 보조금, 수당까지 국민들이 빈곤층으로 떨어지지 않게 촘촘하게 복지 그물망을 치고 있다.”
-영국의 연금제도가 한국과 다른 점은.
“한국도 국민연금이 있다. 또 부모를 부양할 자녀가 없는 경우에도 매달 몇 십만원씩 기초 수당이 나오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영국의 연금과 보조금, 각종 수당체계는 자식과 부모가 완전 별개다. 한국은 부양할 자녀가 있으면 국민기초연금 외에 다른 수당은 없는 것으로 안다. 영국은 자녀가 몇 명이 있든 간에 상관없이 부모가 연금과 각종 생활 수당, 보조금을 받는다. 자녀들도 18살 성인이 되면 정부 보조금을 받는다. 모든 복지제도 체계가 부모와 자식이 별개로 이뤄진다.”
-한국과 비교해 영국의 무상 의료는.
“돈 없고 가난한 사람이 돈 안 내고 무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마음의 보험’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내가 아파도 돈이 없으면 자식에게 의존해야 하고 치료도 못 받는다. 영국은 기다리든 어떻게 하든 간에 정부에서 지원을 해 준다. 조금 늦어서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다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마음의 안심이 된다.”
-무상 의료 때문에 겪는 불편은 없나?
“치료를 받기 위해 많이 기다려야 한다. 어떤 경우는 진단받기 위해 기다리다 병을 키워 피해를 본다. 아주 아픈 중병은 사실 잘 고친다. 하지만 어중간한 케이스는 진단이 늦어지고 병을 키운다. 개인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보험을 들려고 해도 그 때는 이미 병을 얻어 보험 회사에서 받아 주지 않는다. 무상이다 보니까 가난하면 큰 병원을 잘 안 보내 주려고 한다.(영국의 무상 의료체계는 동네 의원급을 거쳐 지역 종합병원으로 가게 돼 있다). 의외로 병을 키우는 경우가 있다. 아주 돈이 많은 부자들은 개인 의사를 이용한다. 하지만 너무 비싸다. 사실 개인 의료보험을 들어 매달 얼마씩 꼬박꼬박 내는 개인 의료 서비스를 활용하는 사람들도 절차만 빨라지지 받는 의료 서비스는 다 똑같다. 진료와 치료를 받는 기간만 단축되는 정도다.”
-의료서비스는 한국이 좀더 낫다고 보나?
“개인적인 생각인데 몸이 많이 아프면 빨리 한국에 가서 진단받고 치료를 하라고 조언한다. 내 돈은 들지만 언제든지 바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좋은 병원과 우수한 진료진이 참 많다. 한국도 치료를 받고 싶지만 돈이 없어 못 받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한국 의료와 보건 서비스는 굉장히 큰 장점이 있다.”
-영국 복지 전반에 있어서 본받을 점이 있다면.
“여기 와서 친정 아버지가 큰 병을 앓다 돌아가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연금을 받고 있다. 영국은 정말로 누구라도 여기와서 정착하면 돈이 많든 없든 간에 도움이 필요할 경우 정부에서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재정적·정신적 서포트를 해 준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게 해 주고 집이 없으면 집을 주고 정신적 상담이 필요하면 그런 의사를 조치해 준다. 복지 서비스에 대한 정도와 만족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 감사하게 생각한다.”
-영국은 보편적 복지의 천국이며 원조 모델국이다. 하지만 개선해야 할 점도 적지 않을 텐데.
“영국은 다 공짜이기 때문에 이용하는 사람도 있다. 교육도 의료도 고마운 줄을 모르는 경우가 있다. 교육과 의료가 무상이면 참을 수 있는 것도 해 달라고 한다. 남용될 수 있다. 어르신들은 별로 안 아파도 외로워 병원에 들어가면 안 나오려고 한다. 정작 치료를 받아야 할 새로운 환자들이 병실을 구하기 힘들다. 특히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들은 부모도 부양하고 아이들도 키워야 하는 샌드위치 신세다. 여기는 부모와 자식의 복지 혜택이 완전 별개다. 하지만 결국은 다 국민 부담이다. 최근에는 세금을 더 내는 그룹에 더 많이 내라고 해 다른 나라로 나가기도 하고 큰 이슈화가 되고 있다. 내 것만 부담하면 좋지만 엉뚱한 사람들이 더 많은 혜택을 본다고 불만이 많다.”
-한국이 나아갈 복지 방향은.
“영국 국민들은 갈수록 내가 좀더 부담하고 좀더 나은 복지 혜택과 서비스를 받기를 원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보편적 복지에 선택적 복지를 가미하고 있다. 한국도 4대 중증 질환에 대한 값싼 의료 서비스 혜택을 주고 있다. 교육제도도 그냥 무상으로 하기보다는 장학금 혜택을 늘리고 중·고등학교 수업료를 낮추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교육과 의료 복지 서비스의 고마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외국의 복지 사례를 폭넓게 잘 연구해서 한국 실정에 맞는 시스템을 찾았으면 한다. 그냥 무상으로 가기보다는 세부적인 카테고리를 정해서 더 많은 혜택이 가야 할 계층에는 더 많이 가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한국도 복지에 대한 투자와 관심이 어느 나라 못지 않게 빠르게 발전해 나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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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경씨가 영국 윔블던 한인교회 뒤뜰에서 카메라 포즈를 취하고 있다. |
◇ She is...
1983년 부모를 따라 영국으로 이민을 온 조민경씨는 영국 전체를 통틀어 5군데 대학 밖에 없는 액츄어리를 전공했다. 한국에는 아직까지 대학 전공과 직업으로서 액츄어리(사고·화재·사망 등의 통계를 연구해 보험료율·보험위험률을 산출하는 일을 하는 사람)가 없다. 액츄어리는 영국에만 있는 독특한 전문직이다.
조씨는 런던 시티 유니버시티를 나왔으며 영국 회사에서 보험자산 관리를 하기도 했다. 영국에서 교민 자녀들을 가르치며 활발한 자원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녀는 영국에서도 중산층이 모여 사는 런던 근교 뉴몰든 지역에 살고 있으며 고소득의 금융전문가인 남편과 함께 상류 사회에 속해 있다.
그녀는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을 둔 주부이기도 하다. 금융전문가인 남편을 따라 영국뿐만 아니라 일본과 홍콩, 한국 등 여러 나라에서 생활했다.
<‘맞춤형 복지, 영국에서 길을 묻다’ 해외 기획취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을 받아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