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형 복지, 영국에서 길을 묻다 무상의료·연금제도 손보는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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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보건부 NHS가 운영하는 동네의원급 GP. 이곳은 지역주민의 기초진료를 맡는다. /사진= 영국 기획취재팀 |
헨든(영국)/아시아투데이 김종원·이정필 기자 = 전 국민 무상의료와 촘촘한 연금으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영국의 사회보장시스템이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다. 영국은 2008년 세계적 경제 위기 이후 재정 악화가 심화돼 더 이상 복지에 대한 투자를 생각할 여유가 없다. 한 해 정부 예산의 70%에 가까운 돈을 전 국민 보건의료와 교육, 복지에 쏟고 있다.
하지만 이미 ‘복지 천국’에서 살고 있는 영국 국민들은 정부가 당연히 더 많은 돈을 복지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지금 누리고 있는 복지 혜택보다 더 높은 수준의 만족을 위해 국가도 개인도 좀더 부담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무엇보다 영국의 보편적 복지를 지탱하고 있는 국민연금과 전 국민 보건의료 서비스(NHS)에 대한 국민적 만족과 기대치는 높아만 가고 있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병으로부터 고통받지 않도록 돌보는 것이 바로 전 국민 보건의료 서비스(NHS·National Health Service)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최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 주는 것이 바로 탄탄한 국민연금제도다.
영국은 전 세계에서는 가장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전 국민 무상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돈 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돈 안내고 무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가족 중에 누가 큰 병을 앓아도 경제적으로 가족이 파탄나는 경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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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몰든에 위치한 GP. '새환자 환영'이라는 한국어가 눈에 띈다. |
◇“정부 복지투자 더 늘려라” VS “개인 부담 높여야 한다”
영국의 보건의료체계는 국가의료서비스(NHS·National Health Service)와 사립의료서비스로 크게 나뉜다. 정부가 세금으로 운영하는 NHS는 우리나라의 보건복지부에 해당하는 보건부(DH·Department of Health)의 예산 대부분을 쓰고 있다. 그 아래 10개 관할구역을 맡고 있는 담당 기관이 있으며 각 지역별로 동네의원(GP·General Practitioners)급 3차 의료기관과 종합병원 수준의 기관이 곳곳에 깔려 있다.
이러한 국가 보건의료 서비스에 더해 각 지역별로 보건부 산하 사회복지 지방관청과 지역 NHS가 평생 사회돌봄의 복지 서비스 책임을 공유하고 있다. 1948년 NHS 탄생과 함께 개인 의료보험으로 운영되는 사립의료서비스도 시작됐다. 사립의료보험 가입자는 자신이 선택한 의사가 본인이 원하는 기관과 시간에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사립의료기관이 그리 많지 않고 응급이나 중환자, 수술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아 사립의료기관을 이용했다가도 중대 사안이 생기면 다시 NHS로 모든 환자들이 후송 되고 있어 NHS의 또 다른 부담이 되고 있다.
또 수술이나 진료를 받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기간이 너무 길고 그로 인해 상태가 악화되는 점, 혹은 아예 그런 기다림이 짜증나서 아예 의료서비스를 받으려 하지 않으려다 사고가 나는 등 의료서비스 자체에 대한 불만 보다는 제대로 된 처치와 치료를 받기까지 거쳐야 하는 중간 과정이 너무 길거나 너무 여러 절차를 거쳐 가야 하는 점이 불만인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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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인근에 위치한 사설요양원 |
◇방대한 NHS 비효율성 누적…비용·인력 대대적 ‘칼질’
영국 NHS 제도는 보건부 아래 전략보건층이 있고 또 그 밑에 1차진료의원회가 있어 병원 진료비를 조사하는 행정관료들이 많다. 동네 의원급에서 환자를 병원에 의뢰해 줘야만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의료비가 무상에 가깝기 때문에 병원 입원 대기 시간만 평균 5.7주이며, 병원 외래 진료도 3.2주는 기다려야 한다.
최근에는 정부 예산 삭감으로 문을 아예 닫거나 의료 인력을 대폭 줄여서 생기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최신 의료기기와 시설, 장비를 계속 갖춰 나가는데 엄청난 비용이 들고 의료서비스의 핵심 인력에 대한 지출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경제 위기로 긴축 재정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영국 정부는 연간 200조원 가까이 되는 NHS 예산은 물론 해마다 4~5%, 약 10조원 자연 증가하는 지출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영국의 무상 의료체계에는 적지 않은 장점들이 많다. 특정 질환들에 대해 치료나 간호, 관리 프로토콜을 국가에서 마련해 모든 NHS 산하 기관으로 전달한다. 특정 질환이 진단되었을 때에 일관된 의료서비스를 전국 어디에 있든 받을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오랫동안 해왔다.
예를 들어 뇌졸중 환자가 있다고 할 때 시골에 있든 도시에 있든 치료 절차가 똑같이 진행된다. NHS는 하나의 시스템이 정착만 되면 환자들은 어느 지역 병원을 방문하든 어떤 질환에 대해서도 거의 똑같은 의료서비스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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윔블던에 위치한 민영병원 |
◇국민 연금제도는 기본, 생활안정 보조수당 촘촘
영국 국민연금의 큰 틀은 1인1기초연금에 더해 근로자 소득 연계의 이중 수혜 구조를 갖고 있다. 한마디로 국민들의 최저 생활을 보장하면서 ‘굶어 죽게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자식이 몇 명이 있든 간에 별개로 부모는 국가로부터 연금을 받는다. 국가로부터 나오는 각종 수당도 부모는 부모대로 받고 자녀들은 18살 성인만 되면 따로 보조 수당을 받는다.
자녀들은 성인만 되면 부모에게 의존하는 게 아니라 만약 생활하는데 도움이 필요하면 정부 보조를 받는다. 대학을 가거나 교육을 받는데 돈이 없으면 국가로부터 해마다 얼마씩 보조금을 받도록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연금에 더해 각종 수당이 잘 돼 있어 집을 살 때 돈을 빌렸으면 정부가 주택 수당을 보조해 준다. 노인들이 국민 연금만 받아 생활하기 힘들기 때문에 주민세를 정부가 다 면제해 주고 있다. 겨울에 추우면 노인들에게 난방 보조 수당이 따로 나온다. 세금을 내지 않아도 가난한 사람들이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무상’ 국민연금이 나온다.
가족 중에 치매나 장애인, 노인, 가정 주부, 아동을 돌보기 위해 노동시장에 진출하지 못하는 국민들을 위해 돌봄 기관에 종사하는 노동자와 똑같은 연금 혜택도 주고 있다.
영국 국민들은 30~40년 전만 해도 따로 개인 저축이 없어도 정부에서 받는 연금과 보조 수당만으로도 생활이 충분했다. 하지만 요즘은 물가가 치솟고 젊어서 활동이 많아져 연금과 보조 수당에 더해 젊어서부터 저축을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아지고 있다.
또 유럽연합(EU)이 출범하면서 세금을 단 한 푼도 안낸 사람들이 각종 보조 수당과 연금을 타고 있다. 외국인이 영국인과 결혼하면 그 배우자한테까지 연금이 나가게 돼 있다. 영국 사람들이 실컷 벌어서 세금 내고 그 수혜가 엉뚱한 사람한테 나가는 것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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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몰든에 위치한 노인 전용 요양원 |
◇ 2016년 단일 연금체계 도입…각종 보조수당도 통합
이에 따라 영국 정부는 연금개혁을 가속화하고 있다. 2016년 4월부터는 소득비례 연금을 완전 없애고 무조건 35년 동안 가입하면 1주일에 142.75 파운드(약 24만원) 기초연금을 주는 단일 연금체계로 통합한다.
지난해 10월부터는 15만명 이상의 사업자는 의무적으로 퇴직연금에 가입해야 하며 2017년 4월부터는 1인 이상 사업장까지도 퇴직 연금을 자동 등록해야 한다.
부족한 연금과 수입을 지원했던 각종 수당도 실질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보편적’ 수당으로 통합했다.
최근 영국은 무상 보건의료와 연금 복지에 있어서 개인 부담이 조금 더 되더라도 좀더 나은 서비스를 받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다만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과 내지 않은 사람 간에 받는 혜택을 둘러싸고 첨예한 논란이 일고 있다.
세금을 내는 사람에게 더 많이 내라고 하면서도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보다 누리는 혜택은 별 차이가 없는 경우도 있다. 이에 따라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국민들이 다른 나라로 빠져 나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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윔블던 지역에 준공 예정인 민간 요양시설 |
<‘맞춤형 복지, 영국에서 길을 묻다’ 해외 기획취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을 받아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