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티나는 얼굴에 부드러운 목소리, 몸에 밴 매너까지.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손짓하는 그의 모습을 본다면 어떤 여성이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이정재는 굉장히 다양한 얼굴을 가진 배우다. '도둑들'과 '하녀'에서 나쁜 남자의 매력적인 존재감을 보여주는가 하면, '시월애'와 '선물'에서는 섬세하고 순수한 감성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그런데도 그에게는 보여줄 부분이 무궁무진하게 남아 있었다.
영화 '신세계'에서 경찰 이자성 역할을 맡아 고뇌하는 남성의 섹시미를 폭발시킨 이정재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정재는 이번 영화에서 갈등하는 남성, 입을 다물고 침묵하는 남성, 감정을 억제하는 남성, 그리고 정장이 잘 어울리는 남성의 모습을 그만의 감성으로 충분하게 표현해냈다.
"이제 저도 마흔이에요. 중년의 연기를 할 수 있었던 첫 영화라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마동석씨와 류승범씨가 찍었던 장면이 있었는데 편집이 됐다는 정도? 하지만 최민식, 황정민 선배님과 함께 했다는 기억들만으로도 저에게는 충분한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서로가 서로의 캐릭터를 돋보일 수 있게 하려고 신경 많이 썼거든요. 뭔가 더 얹어주려고 하고, 배려를 많이 받았죠."
말과는 달리 전혀 나이를 느낄 수 없는 외모다. 하지만 이정재의 연기에 뭔가 달라진 느낌이 묻어나는 것은 사실. '나이를 먹고 내면에 변화된 부분이 있냐'고 묻자 특유의 눈웃음을 짓는다.
"똑같아요. 사실 아직도 젊게 살고 싶은 바람이 있어요. 나이 먹어서 철 없다는 게 좋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오히려 철없이 살고 싶다고 할까요. 젊은 친구들과도 스스럼없이 잘 지내고 싶고. 나이 먹어서 달라진 건 이해의 폭이 조금 넓어졌다는 것 뿐인 것 같아요. 여유가 생긴 건 사실이죠."
여성팬들이 환영할 만한 소식은 이정재가 아직 결혼할 생각이 없다는 것. 그는 '결혼'이라는 문제를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음을 확 빼앗아가는 여성분이 없다고 해야 할까요. 뭐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죠. 결혼에 대해서 환상도 없고, 결혼관도 아직 갖고 있지 않아요. 주변 친구들도 아직 결혼한 사람이 드물고요. 또 제가 일반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은 아니잖아요. 그런 환경에서 살다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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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준원 기자wizard333@ |
아직 남성과 여성 사이의 불꽃 튀는 '인연'은 못 만났지만 그에게는 수많은 작품들이 각자 다른 색깔의 인연으로 찾아온다. 이번 영화 '신세계'도 기가 막힌 인연으로 만나게 된 작품.
"최민식 선배가 '작품 하나 같이 하자'고 전화를 주셨어요. 하지만 알려진 것처럼 전화 한 통으로 바로 하겠다고 한 건 아니었어요. 그때 들어가기로 한 드라마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드라마가 엎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 들리더라고요. 그래서 2주간을 기다렸어요. 그런데도 답이 없어 '신세계'에 합류하게 됐어요. 문제는 '신세계'도 투자를 못 받아서 두 달을 더 기다려야 했죠. 작품을 만난다는 건 배우에게는 정말 인연인 것 같아요."
이정재는 배우로 벌써 20년을 살았다. '시간이 이렇게나 갔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는 그에게 '현재 본인이 생각하는 배우로서의 위치는 어느 정도냐'고 물었다.
"아마 직장인으로 따지면 차장 정도 되지 않았을까요? 얼마 전에는 TV에서 박근형 선생님을 봤어요. 선생님께서 본인은 배우 인생 50년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이 직업은 50년은 해야 배우라는 소리 듣는다'고 말씀하셨어요. 박근형 선생님 같은 분이 50년은 해야 한다고 하시니, 저는 아직 멀었죠. 차장이 일을 제일 많이 한다고요? 그럼 전 만년 차장 하고 싶어요. 외국 같은 경우 나이를 많이 먹어도 액션을 무리 없이 소화하잖아요. 우리나라도 곧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한국영화도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되면 만년 차장 할 수 있는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