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12일 오후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원외당협위원장협의회 워크샵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이병화 기자photolbh@ |
박 후보도 5·16 쿠데타나 인혁당 사건처럼 박 전 대통령 시절의 어두운 과거에 대해 질문 받으면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며 확실한 입장표명을 피하곤 했다. 박 후보가 대통령 후보로서 선친 집권 시대의 일을 객관화하지 못하면서 ‘박정희가 박근혜의 최대 아킬레스건’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지난 10일 박 후보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인혁당 사건과 관련,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나”, “그 부분에 대해서도 앞으로의 판단에 맡겨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이후 정치권은 물론 법조계와 학계 인사들 사이에서도 비판이 쏟아지자 다음날인 11일에는 “대법원에서 상반된 판결이 나온 것도 있지만, 한편으론 그 조직에 몸담았던 분들이 최근 여러 증언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까지 감안해 역사 판단에 맡겨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학계에서는 대통령 후보로서 역사인식이나 발언 내용이 적절치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선택 고려대 교수(법학)는 12일 아시아투데이와의 통화에서 “박 후보의 발언은 과거 대법원의 판결을 뒤엎은 것”이라며 “판결이라는 것은 강제적인 효력이 있는 것으로 ‘존중’하겠다는 발언 역시 필요없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일반 국민의 준법정신과 사법부 대한 신뢰까지 무너트리는 발언”이라며 “아버지 명예회복을 위한 발언이겠지만 사법부의 명예를 훼손시킨 발언이라 사죄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태웅 서울대 교수(역사학)는 “정치권이 역사를 아전인수격으로 자기들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해석한다”면서 “역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를 토대로 올바른 국정운영에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후보는 경선 참여 이후 5·16 군사쿠데타에 대해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했다가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박 후보는 당시 유신에 대해서도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사과를 표명하면서도 “찬반논란이 있으니 국민과 역사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박 후보 캠프 내부에서도 박 후보의 과거사 문제와 역사인식이 20∼40대 지지율 확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신 율 명지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이 사건들에 대해 박 후보가 역지사지의 자세 없이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것을 보고 우리와 관련된 다른 문제도 그러겠거니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며 “결국 이는 2030과의 소통부족 및 지지층 외연 확대에 결정적인 장애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박 후보는 지난 2008년 역사교과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당시 박 후보는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이 교과서 출판은) 후일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교과서에는 일제강점기를 “근대 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함으로써 근대국민국가를 세울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이 두텁게 축적되는 시기”라고 기술하고 5·16을 “한 세대 간에 걸친 근대화 혁명의 출발점을 이루었다”고 평가했다.
5·16 논란은 지난 2007년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의 대선 후보 경선에서도 불거졌다.
박 전 대표는 당시 당 후보 청문회에 참석해 5·16을 “구국을 위한 혁명”이라고 했다.
친박(친박근혜)계 관계자는 “당시 박 후보에게 5·16을 절대 혁명이라고 해서는 안된다고 만류했었다”며 “결국 박 후보의 결단을 누구도 꺾지 못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