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농촌진흥청 자료를 참고해보니, 50년 동안 우리농업이 이렇게 변했다는 것에 대해 놀랍기도 하고 뿌듯한 마음도 드는군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우리 농촌은 매우 황폐해졌습니다. 산미증산계획 등으로 질소질 비료를 과다하게 사용한데다 전쟁의 포화가 심했기 때문이죠.
이런 상황에서 쌀 생산량을 크게 늘린 것은 '통일벼' 입니다. 혹시 '통일벼'를 아시나요?
지금 생산되는 쌀에 비해 맛은 약간 떨어지지만 대량생산이 가능했던 품종인 통일벼는 농업발전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1972년 본격적으로 도입된 통일벼는 당시 쌀 생산량을 최소 30% 이상 늘렸습니다.
또 기계 이앙 기술이 도입되면서 한국 농업은 빠르게 기계화로 접어들었습니다. 도시화로 농촌 인구가 줄어도 모내기를 할 수 있게끔 한 것이죠.
1960년 경운기 국산화가 성공하면서 이앙기, 트랙터, 콤바인 등 다양한 농기계가 부족한 인력을 대체했습니다. 1962년 대비 2010년 농가당 영농시간이 56%, 절반 이상 감소했어요.
1980년대 이후로는 맛있는 쌀 개발이 한창 이뤄졌습니다. 일품벼, 호품벼, 삼광벼 등이 탄생했죠. 이 쌀들은 맛과 찰기, 윤기 면에서 일본의 아키바레, 고시히카리를 능가하는 것입니다.
1970년대 이후 늘었던 잡곡도 최근 건강식품으로 주목받고 있죠. 조, 피, 기장, 수수 등의 기능성이 밝혀지면서 새로운 소득작목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채소류 생산도 마찬가지지요. 채소류는 지난 1965년 158만톤을 생산했지만 품질향상으로 2010년 839만톤을 생산할 정도로 생산량이 크게 뛰었습니다.
가장 처음 개량에 성공한 품종은 배추였습니다. 예전에는 노지에서 재배했지만 무, 배추의 고랭지재배가 시작되고, 제주도 중심으로 월동재배가 발달하면서 다양한 생산물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1960년대부터는 비닐하우스가 보급돼 사시사철 육종이 가능해졌죠.
축산물도 빼놓을 수 없죠. 경제성장에 따라 생산액 10대 품목이 축산물 위주로 변화했습니다. 1961년에는 돼지, 닭만 있었지만 2010년에는 돼지, 닭, 한육우, 우유, 계란, 오리 등으로 대부분을 차지하게 됐습니다.
1인당 육류 소비량은 1965년 3.4kg이었지만 2010년 38.8kg으로 10배 넘게 늘었죠. 식육가공품 생산도 1965년 564톤이었지만 2010년 18만640톤이 됐습니다.
1960년대 어육혼합소시지가 1980년대 돼지고기 중심의 소시지로 바뀌면서 제조, 유통에 혁신이 일어나고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과일 소비량도 크게 늘었습니다. 1970년대 이후 수요가 급증하면서 1965년 31만톤을 생산했지만 2010년 249만톤으로 9배가량 늘었죠.
고품질 과일을 위한 기술개발과 함께 저장 유통기술이 발달해 사시사철 언제나 과일을 맛볼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또 야생화로만 인식되던 꽃은 1980년대 이후 급성장해 현재 1조원 규모의 산업이 됐습니다.
새마을운동으로 현대화에만 신경쓰던 농촌이 농업연구를 통해 상품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농지면적은 감소했으나 생산성이 크게 늘었지요.
앞으로는 인공기상 환경공정, 스마트기술, 바이오에너지 생산 및 미생물 활용 기술, 농촌자원 문화 활용기술 등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농진청은 꼽았습니다.
산업화 시대에 농촌에서 도시로 향하던 이촌향도 물결은 귀농, 귀촌으로 그 흐름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 양태도 농사를 지으려고 하는 것도 있지만 한가로운 농촌 생활을 즐기려고 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또 외국인들이 점차 농촌에 정착하면서 농촌은 빠르게 다원화되고 있지요.
최근에는 농촌이 식량 생산기지뿐 아니라 농촌 디자인과 관광의 소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대관령 양떼목장, 보성 녹차밭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됐습니다.
스위스는 농촌 경관보호를 위해 전선을 모두 지상이 아닌 지하에 깔았다고 합니다. 지상에 설치하는 것에 비해 많은 비용이 드는 것을 감안하면 대단하지요?
우리 농촌도 앞으로는 경관까지 보전해 도시에서는 맛볼 수 없는 흥취를 전달하는 공간으로 남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