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투데이=최재욱 기자] 비장감마저 느껴졌다. 영화 ‘은교’(감독 정지우, 제작 정지우필름) 개봉을 앞두고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박해일은 대단한 도전의 결과를 기다려선지 초조함이 가득했다.
70대 노인 연기에 도전한 것에 머물지 않고 농밀한 내면 심리까지 섬세하게 연기했다. 동명 원작 소설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잘 아는 캐릭터여서 긴장감이 더욱 배가됐다.
“떨리지만 기대도 많이 돼요. 영화 기자님들이 아무리 시사회에서 좋다고 해도 실제 관객들이 어떻게 봐줄지 정말 많이 궁금해요. 영화가 공개되기 전 노출이나 정사신에 초점이 맞춰졌던 건 이해해요. 그러나 이제 영화의 본질에 더욱 눈길이 갔으면 좋겠어요.”
박범신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은교'는 위대한 시인 이적요(박해일)와 패기 넘치는 제자 서지우(김무열), 열일곱 소녀 은교(김고은) 등 서로 갖지 못한 것을 탐하는 세 사람의 질투와 매혹을 그린 작품.
박해일은 멀어져 가는 젊음을 아쉬워하며 17살 소녀에게 매혹되고 제자의 젊음을 질투하는 복잡미묘한 노인의 심리를 연기한다. 아무리 도전을 즐겨하는 배우라 할지라도 엄두를 내기가 쉽지 않은 역할이다.
“정지우 감독님이 시나리오도 주지 않은 상황에서 간단한 원작 캐릭터 설명만 들었어요. 70대 노시인 역할을 나이가 딱 반인 내가 잘 어울릴 거 같다고 하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어요. 일단 원작 소설을 읽어보겠다고 말씀드리고 책을 읽었는데 정말 ”감독님이 나한테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황당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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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준원기자 wizard333@ |
박해일과 ‘모던보이’에서 호흡을 맞춘 정지우 감독은 두 번째 만남에서 모든 의문을 해결해주었다. 70대 노배우가 아닌 35살인 박해일이 연기해야 원작을 관통하는 주제가 관객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처음에는 ‘왜 꼭 저야 해요’라는 부정적인 질문에서 설득을 듣고 나서 ‘내가 너무 부족하지 않을까요’로 바뀌었죠. 한마디로 넘어간 거죠. (웃음) 흔들리는 나에게 자신감을 주셨고 호기심을 불어넣어주셨어요. 베드신이나 노출은 부담이 되지 않았어요. 오히려 70대 노인 연기가 더욱 파격적인 도전이었기에 더욱 긴장됐어요.”
영화 속에서 박해일은 특수분장의 힘을 빌어 외모적으로 70대 노인으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분장한 얼굴로 섬세한 심리 연기를 한다는 건 아무리 뛰어난 배우라도 힘든 일. 전작 ‘최종병기 활’이 육체적으로 힘들었다면 ‘은교’는 정신적인 에너지를 소비하게 했다. 매일 8시간씩 특수 분장을 하면서 캐릭터에 더욱 빠져들었다.
“특수 분장할 때 항상 예민해졌죠. 특수 분장팀 스태프들이 정말 많이 도와줬어요. 제 예민함을 풀어주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해줬어요. 제가 피부가 상할까 항상 뭘 발라주었죠. 그러나 그 분들은 추운날 계속 서서 고생하느라 류머티즘이 생기고 관절이 나갔어요. 정말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아무리 특수 분장의 힘을 빌더라도 70대 노인의 심리와 행동을 표현해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무리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수많은 노인들을 만나더라도 답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만큼 이적요 시인의 감정선은 범상치가 않기 때문이다.
“감독님이 세계적인 70대 문인이나 음악가, 화가 스틸을 넘겨주셨어요. 또한 탑골 공원에 나가 노인들을 만나보았고요. 원작자인 박범신 선생님도 만났어요. 나이가 60대 중반인데 정말 미남이시더라고요.(웃음) 그러나 거기서 힌트는 얻어도 답을 얻을 순 없었어요. 내 안의 나이 듦을 표현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결론을 냈어요. 사실 전 아직 나이 먹는 것에 대해 무딘 편이에요. 조바심 낸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잖아요. 겸허히 받아들여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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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준원기자 wizard333@ |
늘 일에 올인하는 박해일은 어떤 가장일까? 인터뷰를 마무리할 때 사생활에 대해 늘 입을 다무는 박해일에게 가정사를 질문했다. 그러나 역시 특유의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말을 아꼈다.
“빵점 남편 아빠죠. 항상 바쁘니까 같이 있어주지 못하죠. 아내와 결혼 전에는 여행도 잘 다녔는데 요즘은 못했네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