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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오페라는 지겹게 느껴질까?”

“왜 오페라는 지겹게 느껴질까?”

기사승인 2012. 04. 02.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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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연의 오페라 산책](1)오페라 예습하고 보면 재미 두배
오페라 평론가 손수연 씨/사진=우정식 기자 uhcho@
   
클래식음악과 그다지 친하지 않은 지인에게 오페라에 대한 생각을 물어본 적이 있다. “오페라에 호기심도 있고 즐기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전막 오페라 감상은 너무도 지루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고 여태껏 오페라 관련 일을 해오고 있는 필자로서도 그 대답에 동의한다. 

사실 전공자에게도 전막 오페라 감상은 때론 견디기 힘든 일이다. 전공을 했다 해도 방대한 오페라 레퍼토리를 완벽히 알 수 없다. 늘 친숙한 오페라만을 보러가는 것은 아니기에 필자 역시 잘 알지 못하는 오페라를 감상하는 경우, 오페라 문외한들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사람이 제한된 공간에서 낯설고 잘 모르는 존재와 몇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은 크나큰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다. 그렇게 첫 만남이 이뤄지고 나면 오페라가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상대가 돼 버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오페라는 그렇게 가까이 하기에 멀기만 한 상대인 걸까? 더구나 우리 것이 아니고 서양에서 왔기 때문에 항상 낯설고 어려운 사이로 지내야만 하는 것일까? 그렇게 불편하게 지내느니 차라리 모른 척 해버리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오페라를 몰라도 우리네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으니까.

그러나 한평생 오페라와 담 쌓고 살기에는 그 안에 담긴 음악과 이야기들이 너무도 아름답다. 오페라가 먼 옛날 서양의 이야기인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늘을 사는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사랑과 슬픔, 믿음과 배신, 기쁨과 절망 등 세상만사 희로애락이 무대 위에서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오페라가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오페라를 볼 때 음악만 들으려 하기 때문이다. 물론 오페라는 음악으로 진행이 되지만 결코 음악이 우위에 있는 예술이 아니다. 오페라는 음악과 드라마가 대등한 위치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행되는 노래극이다.

‘오페라(OPERA)’란 말의 어원은 ‘작품’을 뜻하는 라틴어 ‘오푸스(OPUS)’의 복수형에서 나왔다. 처음부터 음악을 위한 극이라는 성격이 강했던 오페라는 초반 ‘드라마 인 무지카(DRAMA IN MUSICA)’ 또는  ‘오페라 인 무지카(OPERA IN MUSICA)’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훗날 짧게 ‘오페라(OPERA)’란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이렇게 유래된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오페라에서는 드라마가 음악 이상으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음악이 있다 할지라도 공감 가는 스토리가 없으면 그것은 제대로 된 오페라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초기 오페라는 귀족이나 제후들의 특별한 날을 위한 축하공연 형식이 많았으므로 반드시 구경거리가 동반돼야 했다. 귀로도 만족스러워야 했지만 눈으로도 풍부한 볼거리가 있어야 했던 것이다. 때문에 음악뿐 아니라 무대미술, 의상, 춤 등이 함께 발전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오페라가 오늘날 ‘종합예술’이라 불리는 이유다. 

이 모든 것을 함께 즐기지 못하면 오페라는 당연히 어렵고 지루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내가 들어본 적 있는 아리아 하나 듣자고 가기엔 몹시 부담스런 자리가 되고 만다. 

하지만 오페라 감상이 작품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찾아가는 여정이 되면 느낌이 달라진다. 오페라를 보러 가기 전에 작품에 대한 간단한 배경지식도 알아두고, 그 작품의 유명 아리아를 들어보기도 하는 수고를 조금만 한다면 공연을 감상하는 재미가 배가 될 것이다. 우리가 어떤 드라마에 관심이 생겨 보고자 할 때 그 드라마 홈페이지에 들어가 등장인물도 살펴보고 출연배우나 줄거리 전개를 일부러 찾아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페라를 관람하기 전, 그 오페라에 대한 배경과 음악 등을 미리 알아둔다면 오페라는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다. 사진은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의 한 장면./사진=대구국제오페라축제 조직위원회

오페라는 음악을 매개로 진행되는 하나의 드라마기 때문에 출연 배우나 앞뒤 사정을 알아야 재밌게 볼 수 있다. 시간과 돈을 들여 오페라 공연장까지 일부러 찾아가는데, 약간의 예습 정도야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을까 한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오페라는 음악만이 전부가 아니다. 문학이 있고 연극이 있고 미술이 있고 무용이 있다. 또한 음악에도 당대 유행과 사상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만하더라도 프랑스의 소설가 뒤마 피스가 쓴 소설 ‘동백꽃 아가씨’가 원작이다. 작가는 주인공 남녀의 애달픈 사랑이야기를 말하는 이면에 당시 만연했던 부르주아 계급의 위선과 속물근성을 꼬집었다. 베르디는 원작의 이런 점을 정확히 살리는 오페라를 작곡했기 때문에 결코 동시대를 표현하는 작품으로는 무대에 올릴 수가 없었다. 관객들이 자신의 어두운 면을 들추는 것을 불편해 했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은 15세기 의상을 입고 다른 시대를 연기해야 했다.

이처럼 오페라 한 작품이 탄생해 무대에 오르기까지, 또 초연돼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그 많은 이야기들을 감동적인 음악과 함께 탐험하는 것은 너무도 매력적인 일이 아닐까?

‘지즉위진애 애즉위진간 간즉축지이비도축야(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라는 말이 있다.

조선 정조 때의 문장가 저암 유한준 선생의 문장이다. 이 말은 ‘알면 곧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곧 참으로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곧 모으게 되니 그것은 한갓 모으게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비롯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던 유홍준 교수의 말은 비단 문화재뿐 아니라 오페라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yonu44@naver.com)

▷ 손수연 씨는 대한민국오페라단연합회 이사, 월간 음악저널 편집위원 등을 역임하고 있는 오페라 평론가입니다. 숙명여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건국대 대학원에서 문화콘텐츠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손씨는 한양여대, 서울시립대 등에 출강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쉽고 재밌는 오페라 칼럼을 통해 독자들과 만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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