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투데이=최재욱 기자] 외모는 10대인데 내면에는 40대 중견 배우가 자리잡고 있었다.
MBC 수목미니시리즈 ‘해를 품은 달’로 최고의 주가를 달리는 배우 김수현은 잠시도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게 하는 묘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또래보다 어린 소년처럼 해맑은 미소를 짓다가도 연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40대 중반 중견배우가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해를 품은 달’에서 맡은 이훤 역할로 얻은 인기에 들뜨거나 긴장될 법도 하지만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해를 품은 달’뿐만 아니라 배우 김수현으로서도 굉장히 많은 사랑을 받게 돼 뿌듯합니다. 그러나 그 기대와 사랑에 부응해야 하는 숙제도 생겨난 기분이에요.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아졌다는 것이 기분이 좋아요.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더 넓어진 느낌이에요.”
김수현이 ‘해를 품은 달’에서 더욱 사랑과 인정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나이에 비해 성숙된 연기력이다. 나이에 비해 깊고 넓은 감정의 스펙트럼뿐만 아니라 정확한 대사 전달력까지 호평을 받았다.
업계에서는 단순한 꽃미남 스타가 아닌 배우로서 재목감이 발굴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연기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자 수줍은 홍안의 소년으로 돌아갔다.
“너무 과찬의 말씀이세요. 제가 특별히 잘한 건 없어요. 작품이 좋았을 따름이에요. 운이 정말 좋았던 것 같아요. 사실 제가 부족한 점이 많았는데도 작가님과 감독님, 선배님들의 덕을 많이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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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준원기자 wizard333@ |
‘해를 품은 달’에서 김수현의 연기 중 가장 화제를 모았던 부분은 역시 오열연기다. 이훤이 액받이 무녀 월이가 8년 동안 그리워했던 연우였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통곡할 때 시청자도 함께 울었다.
연우 살해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유일한 피붙이 민화공주(남보라)를 울면서 다그칠 때도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함께 맛봤다. 아무리 연기지만 어떻게 그리 잘 울까?
“사실 전 개인적으로 우는 걸 좋아해요. 왜 눈물 흘릴 때만 느껴지는 기분이 있잖아요? 울고 난 후의 개운한 기분이 좋아요. 월이 연우였다는 사실을 아는 장면이 가장 힘들었어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상태였거든요. 정은표 선배님과 송재림형도 뒤에 함께 엉엉 울었는데 남자 셋이 우니까 좀 웃겼어요."
잘하는 사람 옆에 있으면 더 잘하게 된다는 말이 있듯이 민화공주 역을 연기한 남보라도 김수현과의 오열연기 후 연기자로서 재평가받게 됐다. 김수현은 남보라에 대한 칭찬을 아까지 않았다.
"그 장면에서는 (남)보라가 정말 잘했어요. 그 전까지는 함께 하는 신이 없어서 연기를 그렇게 잘하는 친구인지 몰랐어요. 그날 처음 같이 연기해봤는데 둘 다 정말 많이 울었던 거 같아요. 촬영이 끝나고 나도 모르게 보라한테 박수를 쳐주게 됐어요. 제가 느끼기에 남보라라는 친구는 정말 진심으로 연기하는 친구인 거 같아요."
‘해를 품은 달’은 시청자들의 기대대로 훤과 연우의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대한민국 최고 미녀배우인데다 나이가 다섯 살이나 많은 한가인와의 호흡은 어땠을까? ‘한가인을 대할 때 누나였나? 여자였나“라는 짓꿎은 질문을 꺼내자 볼이 빨개지며 ‘애정신’을 ‘민망한 신’으로 표현하며 부끄러워했다.
“촬영 전에는 혼자 상상하며 연습하는 게 힘들어 빨리 만나고 싶었어요. 그러나 막상 만나니 둘다 낯을 가려 처음에는 어색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순간 훤과 연우가 됐어요. 촬영 내내 누나가 아닌 연우로 대했어요. ‘민망한 신’을 촬영할 때는 저뿐만 아니라 가인누나도 민망해 웃음을 못 참아 NG가 나곤 했어요. 또한 뒤집는 신에서도 합이 안 맞아 몸이 다른데 있고 눈도 엉뚱한 곳을 보았어요. 하하하.”
이렇게 ‘애정신’을 부끄러워하면서도 중전 보경(김민서)과의 합방신에서 “옷고름 한번 풀어보지”라는 섹시한 대사로 여심을 흔들었다. 여성을 너무 능숙하게 유혹하는 말투는 아무리 연기지만 실전 경험이 많은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게 한다. 엉뚱한 질문에 김수현은 호탕하게 폭소를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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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준원기자 wizard333@ |
“그런 대사를 해볼 수 있었어 작가님께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해요. 만약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섹시하다고 생각한다’를 알고 있었다면 진작부터 그렇게 했을 거예요. 아직 그런 방식은 잘 몰라요. 그 장면을 함께 촬영한 민서 누나는 사실 훤을 미워해요. 사랑받지 못한 보경에 너무 몰입해 있나 봐요. 하하하.”
그렇다면 전국 모든 여성이 궁금해하는 김수현의 이상형은 뭘까?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지 다소 추상적인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저는 훤처럼 이벤트 같은 건 잘 못해요. 그냥 저랑 어울리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어떤 타이밍 같은 게 잘 맞는 사람이요.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둘이 진짜 잘 어울린다. 니네 만나야 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