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진 기자] 무소속 강용석 의원이 ‘국회의원 집단모욕죄’로 고소한 개그맨 최효종씨(25)에 대한 경찰의 수사가 시작됐다.
개그 프로를 통해 국회의원을 풍자한 것이 과연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을 끄는 가운데 법조계 내부에서는 모욕죄가 성립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또 본인 스스로 여성 아나운서들에 대한 성희롱 발언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강 의원이 이 같은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현재 사건은 서울 영등포경찰서 경제3팀에 배당돼 서울남부지검 형사4부(이완규 부장검사)의 수사지휘 아래 법리검토 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23일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모욕죄는 원래 경제팀에서 수사해왔다. 아직 수사팀만 정해졌을 뿐 구체적인 사건 담당 형사는 배당이 안 된 상태”라며 “통상 고소인에 대한 조사가 먼저 이뤄지고 피고소인을 조사하게 되지만 아직 구체적인 소환 일정 등은 전혀 정해진 게 없다”고 밝혔다.
최씨의 발언이 모욕죄에 해당하는가와 관련해 △법리적 관점에서 모욕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내용의 발언이 있었다는 점이나 △그 피해자인 명예의 주체가 국회의원 전체가 된다는 점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릴 수 있는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할 때 성립하는 ‘모욕죄’는 불특정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 즉 ‘공연성(公然性)’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는 명예훼손죄와 차이가 없다.
하지만 모욕죄는 명예훼손죄와 달리 ‘사실의 적시’가 없어도 성립된다. ‘저 망할 년’, ‘빨갱이 계집년’, ‘애꾸눈 병신’, ‘아무것도 아닌 똥꼬다리 같은 놈이 잘 운영되어 가는 어촌계를 파괴하려 하네’ 등이 그동안 우리 법원이 모욕죄 성립을 인정한 예다.
명예훼손죄나 모욕죄는 그 대상이 특정된 인물이 아닌 집단일 경우에도 성립된다. 이른바 '집단모욕죄'는 그 집단 전체를 지칭함으로써 구성원 전원의 명예가 훼손되는 경우나, 집단 구성원 중 불특정한 1인 또는 수인만을 지적함으로써 구성원 전체가 의심을 받게 되는 경우 등에 성립한다.
이번 사건의 경우 전자, 즉 국회의원 전부를 상대로 발언한 경우로 모욕죄가 인정된다면 그 피해자는 개개 국회의원들이 될 것이다. 독일 판례 중에는 ‘직업군인’ 전체를 살인자에 비유한 보도에 대해 명예훼손죄 성립을 인정한 것이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과연 최씨에게 국회의원들을 모욕하려는 ‘고의’를 인정할 수 있겠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현직 A 검사는 “나라면 당연히 ‘무혐의’로 불기소처분 할 것”이라며 “최씨에게 모욕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일단 수사가 진행되려면 강 의원을 상대로 한 고소인 조사가 먼저 이뤄져야 하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 전에 고소를 취소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고소 취소를 통해 사건을 마무리하는 것이 모든 면에서 가장 바람직해 보인다”고 입장을 밝혔다.
B 검사는 “강 의원이 아나운서들에 대해 발언했던 것과 이번 사건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며 “강 의원의 발언 내용이 여성 아나운서들에 대한 이성적 비판을 담은 내용이 아닌 비하적·모욕적 발언이었다면 최씨의 발언은 국회의원들의 통상적인 잘못된, 즉 비판받아야할 행태들을 꼬집는 내용이었던 데다가 그 대상 역시 웃음을 찾기 위해 자리한 관객들을 상대로 한 것인 만큼 형법상 모욕죄로 의율하기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C 판사는 “최씨의 공연 중 발언에 모욕의 고의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며 “정치인이나 유명 연예인들에 대한 건설적 비판을 위한 사실적시의 경우 처벌하지 않는 미국의 ‘공인이론’을 굳이 원용하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측면에서도 이번 고소는 부적절해 보인다”고 꼬집었다.
앞서 최씨는 지난달 2일 방송된 KBS 2TV 개그콘서트 ‘사마귀 유치원’에서 국회의원이 되기 위한 방법을 가르쳐주겠다며 “집권여당 수뇌부와 친해져서 집권여당의 공천을 받아 여당의 텃밭에서 출마를 하면 되는데 출마할 때도 공탁금 2억만 들고 선관위로 찾아가면 돼요”, “선거 유세 때 평소에 잘 안가던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할머니들과 악수만 해주면 되고요. 평소 먹지 않았던 국밥을 한번에 먹으면 돼요”, 또 “공약을 얘기할 때는 그 지역에 다리를 놓아준다던가 지하철역을 개통해 준다던가, 아~ 현실이 너무 어렵다구요? 괜찮아요. 말로만 하면 돼요”라는 등 발언을 했고 강 의원은 최씨가 이 같은 발언을 통해 국회의원을 집단적으로 모욕했다며 지난 17일 서울남부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