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8일 진행된 ‘추석맞이 특별기획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위키리크스와 관련, “(그 얘기를) 믿는 사람이 있겠느냐”고 말했다./사진=청와대 제공 |
온 가족이 모처럼 한 자리에 모인 올 추석 밥상에서 가족내 대소사 다음에 나온 주요 화젯거리들이 아니었을까요?
이와 함께 정보공개 전문사이트, 폭로전문 웹사이트라는 표현부터 다소 생경스런 ‘위키리크스(www.wikileaks.org)’도 화제였습니다.
여론의 바로미터로 자리 잡은 트위터에서도 추석연휴 내내 위키리크스와 관련된 많은 글들이 오르내렸습니다.
#1. “기자들이 없으니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다. 미국산 쇠고기가 좋고 싸기 때문에 좋아한다”(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2008년 1월16일)
#2. “몇 안되는 축산업자와 귤 재배자들 때문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포기할 수는 없다. 한국소는 미국산 사료를 먹기 때문에 진짜 한국산이 아니며 한국 쇠고기를 살리자고 주장하는 것은 이미 물 건너간 것이다”(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2007년 6월5일)
#3. “이명박 대통령은 뼛속까지 친미·친일이니 시각에 대해 의심할 필요가 없다. 이 대통령은 친중국 성향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이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이상득 국회부의장. 2008년 5월29일)
#4. “대운하 계획은 한국경제를 부흥시킬 요체가 아니며 다른 선거 공약들도 그저 그렇게 끝날 가능성이 있다”(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 2008년 12월19일)
위키리크스가 이번에 공개하고 언론과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이미 화제가 됐던 얘기들입니다.
하나하나가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 매우 민감한 내용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위키리크스가 지난달 25일과 지난 2일 두 차례 나눠 공개한 한국과 관련된 2000여건의 주한 미대사관 외교전문 가운데는 더욱 예민한 내용들도 있습니다.
지난 대선 막판 최대쟁점이었던 ‘BBK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서는 당시 이명박 후보진영에서 미국측에게 핵심인물인 김경준씨의 한국송환을 미뤄달라고 요청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대선 당일인 2007년 12월19일 작성된 전문에서 버시바우 대사는 이 대통령에 대해 “수줍음을 많이 탄다. 많은 사람들을 포용할 만큼 개방적이지 않다. 이것이 박근혜, 이회창 전 대표와 잘 지내지 못하는 이유”라며 “대인관계에서 서투르기 때문에 소규모 측근 집단만을 신뢰한다고 알려져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또 미 대사관은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2008년 6월16일자 전문에서 “이 대통령은 5년 임기중 겨우 4달만을 지냈지만 이미 10%라는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면서 “곧 ‘절름발이 지도자’(crippled leader)가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21세기 동맹’인 그에 대해 기대를 낮출 필요가 있을 것”이라며 실망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물론 미국의 이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미 대사관은 대선 전인 2007년 2월2일자 전문에서는 이 대통령에 대해 “한나라당 지지자들뿐 아니라 전통적인 진보적 유권자 층으로부터도 지지를 끌어오고 있다”며 다른 후보들보다 서민적이고 인간적이며 어디를 가나 록스타와 같은 환영을 받는다고 호평했습니다.
이밖에 2006년 11월21일자 전문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버시바우 대사에게 중동에서 건설사업을 했던 경험을 언급하면서 특유의 ‘내가 해봐서 아는데’ 화법을 구사해 눈길을 끕니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잘 아는데 미국은 침공 전 이라크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했어야 했다”며 “이라크 사람들이 후세인을 어떻게 여기는지 몰라 침공 이후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위키리크스에 많은 관심이 쏠리는 것은 이처럼 정치·외교뿐 아니라 사회전반에 걸친 최고권력층의 생각이나 말들이 가공되지 않은 채 ‘날것’으로 공개되면서 그만큼 뉴스와 정보로써 높은 가치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위키리크스가 자체 검증을 한다고는 하지만 공개한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 전문외교관과 대사관이 본국에 보고하는 내용을 단순한 ‘첩보’ 수준으로 폄하하는 것도 올바른 태도는 아닐 것입니다.
실제 위키리크스가 이번에 공개한 미국 외교전문 25만1287건 가운데 한국관련 내용은 1980여건인데, 이중 2급 비밀이 127건, 3급 비밀이 966건에 이르렀으며 대외비는 241건, 나머지가 일반문건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부는 위키리크스에 대해 철저하게 묵살하거나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이 대통령이 지난 8일 가졌던 ‘추석맞이 특별기획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위키리크스에 대해 언급한 대목에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에게 ‘이명박을 잘 지켜봐라(look out for him)’고 했는데 ‘잘 돌봐줘라(take care of him)’고 잘못 이해해 고속 승진시켰다는 위키리크스 관련 질문이 나오자 “(그 얘기를) 믿는 사람이 있겠느냐”며 “정 회장이 그때 한창 젊을 때인데 귀가 어둡겠나”고 답변했습니다.
외교통상부도 “위키리크스가 다량의 문서를 유출·공개한 것은 무책임하고 부적절하다”며 “불법으로 공개된 문서에는 일체 대응하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청와대 관계자 역시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도 아니고 확인된 내용도 아닌데 일일이 대응하기도 어색하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이 대통령과 현 정부와 관련된 다소 민감한 내용들이 많다보니 조심스러운 모습입니다.
그러나 민주당은 추석연휴 마지막 날인 13일 “위키리크스가 연이어 공개하고 있는 미국 정부의 외교전문을 보면 이 대통령이 과연 어느 나라 대통령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발언들이 잇따르고 있다”면서 “대통령의 사명감과 역사의식이 부족한 국가관 때문”이라며 비판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또 인터넷과 트위터에서는 위키리크스 청문회 청원운동까지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를 보면 위키리크스를 둘러싼 논란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해커 출신의 호주인 줄리안 어샌지로부터 촉발된 위키리크스 바람이 한국에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