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세와 부가가치 세율도 오른다. 일반 국민들의 삶은 더 팍팍해질 전망이다. 국영 기업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급여는 30% 가량 삭감된다. 공공 기관에 근무하는 임시 근로자들의 계약도 만료될 것으로 보인다. 국방비와 교육비, 지방정부 보조금, 복지 분야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지출 또한 삭감된다.
문제는 이 같은 긴축정책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당분간 회생의 기미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수십 년 간 지속된 복지 포퓰리즘의 여파가 그만큼 큰 까닭이다. 근 반세기 동안 평균경제성장률 5.2%를 기록한 그리스는 복지 정책을 두고 정당끼리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심지어 보수정당까지 복지 경쟁에 참여했다. 1981년 이후 30여 년 간 지속된 복지 경쟁의 결과는 ‘국가부도’로 이어졌다.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자유기업원에서 아리스티데스 하치스(Hatzis) 그리스 아테네 대학교 교수를 만났다. 그는 ‘복지 열풍’이 불고 있는 한국 정치권을 향해 “그리스 정책을 잘 살펴보고 반대로 해라”고 말했다. 포퓰리즘 경쟁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전세계적으로 전례없는 규모의 긴급구제 지원을 받게 된 그리스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으라는 얘기다. 인터뷰는 본지 하만주 정치부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아리스티데스 하치스 그리스 아테네대학 교수. /사진=이병화 기자 photolbh@ |
-한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이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사회를 통해 지원을 받고 회복됐지만 그리스만 다른 결과를 보이는 것 같다.
“1929년부터 1980년에 이르기까지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리스 평균경제성장률은 5.2%를 기록했다. 이는 같은 기간 일본이 기록한 4.9%보다 높은 수치다. 또 그리스는 1인당 실질소득이 2배 증가하는 데 14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84세 그리스인의 경우 자신의 미래 실질소득이 2배 증가하는 것을 평생 6번이나 경험했다는 의미다.
-그리스와 비슷한 현상이 현재 한국에도 나타나고 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 간 복지 정책에 대한 경쟁이 치열하다.
“거의 모든 한국 사람들이 그와 같은 걱정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정치가, 경제학자, 언론인 할 것 없이 복지논쟁 얘기뿐이다. 그리스가 전쟁과 군사독재 등 비정상적인 정치상황에서 엄청난 경제적 성과를 거둔 것은 한국과 많이 닮았다. 현재 한국의 상황도 그리스에서 펼쳐졌던 포퓰리즘 논쟁 상황과 유사하다. 좋은 현상으로 보이지는 않으며 (복지 논쟁으로부터의) 출구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국에서의 복지 논쟁이 그리스와 유사한 결과를 낳을 것으로 보는가.
“불가능하지 않다. 정책 결정자들이 ‘모두를 위한’ 복지국가를 위해 지출할 때 자신들은 이같은 결정의 책임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단기적으로는 국민들로부터 표를 얻을 수 있고 더 많은 시간이 흐르면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은 이미 죽었거나 정치권에서 떠날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둔화된 성장속도, 손상된 시장경제, 도덕적 해이 등의 결합되면 갚아야 할 금액은 몇 배로 늘어나게 될 것이다.”
-영국의 경우에도 보수당이 노동당 정권의 재정 지출을 만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이에 대한 반발이 폭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재정적자와 관련한 문제는 거의 모든 유럽 국가들이 당면한 문제다. 그리스 위기 이후 아일랜드와 포르투갈, 스페인에 위기가 닥쳤다. 현재는 이탈리아를 넘어 프랑스 위기에 대한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프랑스는 세계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가 유로존(Eurozone)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 재정 시스템에 미칠 위험성에 대해 고려해야 할 때다. 미국도 역사상 처음으로 신용 강등을 경험하지 않았는가.”
“지출 면에 있어서 정치인들이 보수적으로 행동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런 면에서 기본적으로 복지국가란 매우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정부가 안전망(safety net)을 구축했을 때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복지국가를 유지하려면 부(富)를 창출해야 한다. 시장 외에 부를 창출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는 없다. 시장 거래는 승자와 패자가 있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윈-윈 게임으로 실질적이고 가시적인 부를 창출한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비율 30% 선은 결코 안전한 수준이 아니다. 그리스의 국가부채는 1980년 GDP 대비 28% 수준이었으나 불과 10년 만인 1990년 89%까지 올라갔다. 2010년 초엔 140%에 도달했고 지금은 150%를 넘어섰다. 재정적자는 1980년 3% 이하이던 것이 2010년 15%를 넘었다. 1980년에 GDP의 29%이던 정부 지출이 30년 후인 2009년에 53.1%까지 늘어났기 때문이다. 부채 비율 한도를 정하자는 의견은 매우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한국이 그리스와 같은 ‘모럴 해저드’를 피할 수 있는 방안은 뭔가.
“‘오늘 사용하는 대가를 후에 반드시 지불한다’는 점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이는 마치 흡연하는 습관과 비교할 수 있다. 흡연으로 인한 습관은 후에 반드시 비용을 수반한다. 흡연 자체가 위험하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모럴 해저드는 매우 나쁜 출발을 시작하게 하는 요소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경제학회, 미국법률·경제학회, 미국정치과학회에서 활동하면서 미국 정치 및 법률, 철학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유럽연합 및 국제경제 및 철학 문제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또 그리스 법·경제학회(Greek Association of Law & Economics) 공동 편집위원장을 역임하고 있다. 최근에는 뉴욕타임즈(The New York Times) 인터넷판을 통해 ‘그리스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in Greece)’라는 주제로 기고문을 게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