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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타이 부대의 귀환은 우파에게 ‘패배’를 의미했고,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민주화를 향해 항해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했다.
1987년 넥타이 부대는 ‘맨몸’으로 남대문시장과 서울시청 광장에 쏟아져 나왔고, 2002년에는 인터넷과 문자메시지가 넥타이 부대의 투표를 독려했고, 2011년에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넥타이 부대를 투표장으로 이끌어 냈다.
방법과 수단은 달랐지만 기득권층에 반감을 가진 ‘넥타이부대’가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번 4.27 재보선에서 경기도 성남 분당 을 선거구에 출마한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는 “(한나라당은) SNS를 조심해야 한다. 내년 총선․대선 때도 투표 종료 1~2시간 전에 SNS가 쫙 돌아 젊은이들이 투표장에 줄 서는 일이 되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SNS가 오늘날 정치현장에서 ‘본질’은 아니다. SNS는 넥타이부대의 정치적 견해를 표출하는 ‘도구’일 뿐, 한나라당이 넥타이부대와 ‘소통’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번 재보선 결과가 던져주는 핵심 메시지이다. 30여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넥타이 부대’는 여전히 한나라당 혹은 우파의 ‘적’이라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87년 넥타이부대는 왜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나?
87년 6월 시청앞 광장과 남대문 시장 앞에는 넥타이를 맨 직장인들이 한가득 몰려 있었다. 87년 이전 민주화 시위는 ‘대학생’들만의 전유물이었지만 87년 6월은 달랐다.
육교 위에서 장사하던 아주머니들이 독재타도를 외치는 학생들을 향해 “잘한다”고 격려했고, 길을 가던 자동차에서도 경적을 울리며 호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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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경찰의 최루탄 사용 반대 집회를 벌이는 일반 시민들 모습. 87년 6월 민주화 항쟁 당시 학생들을 보호하려는 보통 시민들의 움직임이 그 어느 때 보다 활발했다. 사진은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소장 자료. |
왜 이런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권력의 사유화’로 지칭되는 집권층의 부패와 무능이 중산층에 속하는 넥타이 부대의 마음을 돌려 놓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당시 집권층은 △부동산투기 △정경유착 △불로소득과 탈세를 공인하는 금융가명제 등으로 대표되는 ‘경제적 불의’를 공공연하게 저지르고 있었고, 이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독재타도”라는 전국민적 구호로 터져나온 것이다.
◇인터넷·문자메시지와 넥타이부대
2002년 대선은 여러 측면에서 한국사회를 크게 변화시킨 선거였다. 언론이라는 기득권 집단만을 통해 ‘민심’이 유통되던 시스템이 인터넷을 통해 ‘직거래’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인터넷 열풍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민심 직거래’는 노 전 대통령에게 적지 않은 타격도 줬다. 노 전 대통령이 김영삼 전 대통령을 예방한 것과 관련 “노무현도 기성 정치인과 다를 바 없다”는 인식이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면서 노 전 대통령의 지지율 급락이라는 ‘현상’을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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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넥타이부대의 정치참여 열기는 '노사모' 열풍'을 일으켰다. 사진은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 소장 자료. |
노 전 대통령이 열세를 딛고 극적인 승리를 거둔 원동력은 넥타이 부대들이 인터넷과 휴대폰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투표를 독려하면서 투표 종료 전 ‘투표율’이 급상승해 노 전 대통령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
당시 인터넷에서는 출구조사결과 노 전 대통령이 지고 있다는 메시지가 급격히 돌았다. 이는 인터넷 메신저와 채팅, 그리고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통해 순식간에 확산됐다. 이 메시지가 일반 대중들에게 급격히 유포되면서 ‘위기감’을 느낀 넥타이 부대들이 대거 투표에 참여했다.
선거가 끝난 뒤 한나라당에서는 출구조사 결과가 선거 중간에 무단 유포돼 졌다며 언론사를 성토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이 또한 한나라당이 본질을 잘 꿰뚫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에 불과했다. 넥타이 부대들이 왜 한나라당 집권에 ‘불안’해 했느냐가 본질적인 원인이었지만 한나라당 ‘배지’들은 남의 탓 하기에 바빴던 것이다.
당시 넥타이 부대들은 △한국 정치에서 부정부패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 △북한 붕괴를 원하는 우파 정치인들의 ‘통일관’이 전쟁을 불러 올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즉 한나라당이 집권할 경우 ‘시계바늘’이 거꾸로 되돌아 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이들을 투표장으로 불러 모은 것이다.
◇SNS와 넥타이부대…여전히 먼곳에 있는 한나라당
넥타이 부대는 정치권에서 흔히 ‘산토끼’에 비유된다. 산토끼는 중도적 성향을 띠고 있는 넥타이 부대를 각 정당의 고정지지층을 ‘집토끼’라고 부르는 것에 빗대 만들어진 용어인 것이다.
이번 4.27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한 것은 ‘중도적 성향’ 유권자들을 더 이상 ‘흡입’할 수 있는 요소가 한나라당에서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즉 한나라당내에서 ‘좌․우’의 균형추가 사라졌다는 것.
김부겸 의원 등 한나라당내에서 소수 목소리를 내던 정치인들이, 한나라당내에서 버텨내지 못하고 민주당으로 옮겨갔고, 이재오 특임장관, 김문수 경기도지사 등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도 ‘보수’경쟁을 벌이고 있다. 즉 한나라당 당내에는 ‘우파 액셀’만 가동되고 있는 것이다.
대북식량지원의 경우 굶주린 북한 주민에 대한 ‘지원’ 이외에도 △국내 쌀값 안정화 △식량 보관 비용 절감 등 ‘실용적’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붕괴를 위해서는 대북 지원을 끊어야 한다는 ‘이념적’ 측면으로만 정책이 수행되고 있는 것이다.
당내에서 대북식량 지원 목소리를 내는 소장파 정치인들은 ‘왕따’ 당하는 게 현재 한나라당의 분위기이다.
이 외에도 국민적 지지도가 낮은 △4대강 사업 강행 △한상률 전 국세청장에 대한 봐주기식 검사 수사 △언론탄압 등 ‘구시대’적 정치를 강행한 것이 넥타이 부대의 불만을 증폭시키는 동시에 ‘위기감’을 줘 이들을 투표장으로 불러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