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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영화 엑스트라 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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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준 기자

승인 : 2011. 04. 26. 22:29

영화 '마이웨이' 촬영 체험기… 밥값빼니 일당 4만원
                                                   
스튜디오 탄타라 사이트에 게재된 영화 '마이웨이'의 한 장면.
[아시아투데이=유선준 기자 ] 아침 일찍 오전 5~6시쯤 서울 여의도 KBS 별관 앞에서는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모여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다름 아닌 영화 보조출연자들, 일명 엑스트라들이다.

26일 아침에도 KBS 별관 부근에는 100명은 족히 될법한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모양새만 봐도 어딘가 영화촬영소로 갈 엑스트라들이라는 것을 금새 눈치챌 수 있었다.

기자도 엑스트라 경험을 하루 해본 경험이 있어서인 지 그들이 유독 눈에 띄었던 것이다.

신문사 취업 준비 중이던 지난해 11월 10일. 보조출연을 하면 일당 8만원을 준다기에 귀가 솔깃해져 무작정 영상물제작 인력공급업체를 찾아 갔다. 
5월 개봉 예정인 장동건 주연의 영화 ‘마이웨이’의 엑스트라 배역을 받았다. 엑스트라 첫경험이기에 기대는 됐지만 ‘내가 이런 일까지 하게 됐구나’하는 생각에 스스로 처량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고 돈벌이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생활비도 궁했지만, 다음날이 ‘빼빼로 데이(11월11일)'여서 여자 친구와 데이트비용이 당장 필요했다.

평소 잘해주지 못한 여자친구에게 이 날만은 빼빼로라도 반드시 사줘야겠다는 일념으로 저녁 늦게 집을 나섰다.

서울 신사역에 도착하니 오후 10시 55분. 40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역 주위를 가득 메운채 촬영장인 군산 새만금지구로 내려갈 촬영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추위 때문에 몸을 움크리고 있었다.

개인적인 사연도 가지가지 였다. 돈을 못 벌어 부인에게 쫓겨난 사람, 소년 가장, 노숙자 출신, 고등학교 중퇴자 등등. 상당수가  스스로 주목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탓인 지 분위기는 다소 침울했다. 

“확인란에 서명하고 촬영가는 버스에 오르세요.”

촬영스텝의 말이 들렸다. 사람들이 일제히 버스를 타려고 하는 바람에 버스 주변은 일순간 시장터가 됐다. 스텝들은 목소리를 높여 '한줄로 서달라'고 외쳤다.

사람들은 승차하기가 무섭게 의자를 뒤로 눕혀 편안한 자세를 취하기 바빴다. 말 건네고 싶어도 눈치가 보일 정도였다.

출발한지 10여분쯤. 비교적 젊은 나이의 사람이 “안자면 피곤해요! 새벽 6시부터 촬영 준비해야하는데”라며 잠을 청할 것을 권했다.

그의 사연을 들어보니 한때 사업이 잘돼 연 7000만원 정도 벌 때도 있었지만 어쩌다 도박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고 이 일을 하게됐다고 했다.

신사동에서 촬영장인 새만금지구까지는 꽤 먼 거리였다. 경험이 있는 보조출연자들은 야간촬영이 피곤함과 추위와의 싸움이라며 잠이라도 푹 자두라고 충고했다. 

출발한 지 3시간쯤 뒤 군산 새만금지구에 도착했다.

버스 창 커튼을 제쳐보니 광활한 대지가 한 눈에 들어왔다. 매립지라 주변 환경은 썰렁하고 횡해보였다. 

‘마이웨이’가 대동아전쟁을 소재로 한 전쟁영화라 넓은 장소가 필요해 이 곳을 촬영장소로 택했다고 한 스텝이 설명했다. 

차에서 내리자 스텝들이 야광지휘봉으로 보조출연자들을 인도하며 “오전 7시까지 얼굴 분장부터 해야 되니까 서두르세요”라고 고함을 치고 있었다.

보조출연자 팀장(단역배우급)들은 보조출연자들을 허름해 보이는 분장실로 데리고 간 뒤 줄을서라고 지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조출연자 대부분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으로 변해 있었다.

어느새 시간은 흘러갔고, 오전 7시 30분이 돼서야 기다리던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메뉴는 미역국, 소세지, 김치, 달걀 등 생각보다 괜찮았다. 마침 생일날이던 기자는 마침 미역국이 나와 '웬 떡이냐' 싶었다.

하지만 맛있는 식사도 잠시, 밥값 5000원은 촬영비에서 공제한다는 스텝의 말에 사람들은 격분하기 시작했다. 

“밥값 5000원 빼면 남는게 뭐 있어”, “정말 남는 거 없네. 전주까지 내려와서 밥도 못 얻어 먹다니”, “아 그래서 밥이 맛있었구나” ….

한탄과 원망을 들으며 식사를 하니 밥맛이 있을 리 없었다. 

한바탕 소동이 끝난 후 스텝들은 400여명의 단역배우들을 열을 맞추게 한 후 간단한 대사를 알려줬다. 

“일본 톱스타 오다기리 죠가 ‘천황폐하 만세’라고 일본어로 외치면 일제히 동시에 따라서 하세요.”

잠시 후 일본 배우 오다기리 죠가 등장했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였. 안정된 목소리로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일본군에게 명령하는 모습이 역시 프로다워 보였다.

그동안 엑스트라들은 몸에 맞지 않는 일본군 복장과 무거운 장총을 메고 일본어 구호와 사열이 제대로 될 때까지 무한 반복 연습을 하고 있었다. 

스텝들은 욕과 반말을 하지 않을뿐 군대에서 고참이 하는 행동과 같았다. 이등병 처럼 주위 눈치나 보며 일하는 나 자신이 점점 초라해져 가는 느낌이었다.

추위에 떨며 열을 맞추고 일본어 구호를 목이 터져라 외친지 4시간. 오후 12시 20분 평상시 같으면 점심시간이었다. 몸을 많이 움직여 배가 고팠지만 점심 먹자는 말은 한마디도 없이 촬영이 진행됐다.

잠시 후 장동건과 강제규 감독이 등장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두 사람이 나타나자 주위에 '아우라'가 생기는 듯 했다. 강 감독은 스텝들을 지시하며 예리하게 배우들을 주시했고, 장동건은 일본군 복장을 갖춰 입고 촬영에 열중했다.

장동건의 등장에 보조출연자들은 사열을 이탈하고 구경하기에 급급했고, 스텝들의 잔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 씬 성공 못하면 점심식사 늦어집니다.”

한 스텝의 말에 보조출연자들은 다시 동요하기 시작했다. "치사하게 밥 먹는 것 가지고 xx이야." 식사를 조건으로 일을 요구받은 엑스트라들 입에서 거친 말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NG만 50번 넘게 났는데…" , “언제 밥 먹을거냐?”

불만이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왔지만 스텝들은 모르는 척 촬영을 독려했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오후 2시 30분이 돼서야 강제규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기쁨에 분위기가 좋아졌지만 그것도 잠시.

“오늘 촬영은 여기까집니다.”

엑스트라들 입에서는 또다시 불만이 튀어나왔다. 촬영미달로 애초 기대했던 일당 8만원은 5만원으로 깍였다. 두 끼 식사비를 합한 1만원을 제외하면 남는 돈은 4만원 뿐.

단역배우들은 4만원 벌자고 새만금까지 왔냐며 스텝들에게 항의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식사를 마친 후 서울행 버스를 타야만 했다.

버스를 타니 오후 4시 10분. 몇몇 장기 촬영자들만 빼고 대부분의 보조출연자들은 버스 안에서 한마디씩 하소연을 털어놨다.

“여기 도대체 왜 왔는 지 모르겠네”, “일 팽겨치고 좀 벌려고 왔는데 너무하네”, “이렇게 가면 애들 분유 값도 벅찬데” ….

잠시 후 한 스텝이 버스로 올라와 야간 촬영 신청자를 받는다고 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단역배우들은 일제히 손을 들며 신청을 했다. 스텝은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한 사람씩 신청하라고 지시했다.

단 돈 4만원을 벌어가는 것을 생각하면 야간촬영을 하고 싶었지만 더 늦게 서울에 가면 여자친구에게 빼빼로를 못주겠다 싶어 단념했다.

“야간 촬영 안하시는 분은 전주역에 직접 가서 오후 6시에 대행업체 차량을 타고 이동합니다.” 

야간 촬영을 포기한 6명은 전주역으로 향했다.

전주역에 도착한지 30분이 지났는데도 대행업체 차량은 오지 않았다. 기다림에 지쳐 화가나기 시작했다. 저녁 7시 30분이 됐는데도 차가 오지 않자 단역배우들은 대행업체에 전화를 걸어 따지기 시작했다.

“지금 장난하나. 고생했는데 이러면 안되지”, “단돈 일당 4만원에서 무궁화호 열차 값 2만 5000원을 제외하면 남는 게 있냐”, “다시 차량 돌아오게 해라.”

하지만 대행업체 버스는 이미 서울로 출발한 상태였다. 대행업체 직원은 차를 놓친 보조출연자들 잘못이라고 탓했다.

결국 무궁화 열차비 2만 5000원을 받게 됐다. 개인 통장으로 입금은 바로 됐지만 그 때 당시를 회상하면 지금도 씁쓸하다.

일행들과 저녁 한 끼를 하고 영등포행 무궁화호 기차에 몸을 실으니 오후 9시.

일당 4만원을 쥐고 눈을 감으니 고됐던 하루 일과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평소 영화 보면서 주연배우만 보지 말고 엑스트라들도 눈여겨 봐줄 걸…."

영화 한편에도 눈에 보이는 것보다 숨어있는 땀과 한숨이 더 많다는 것을 절감한 하루였다.

4만원에서 여자친구에게 빼빼로 사주고 택시태워 집에 보내고 나니, 주머니에는 2만원이 채 남지 않았다.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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