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국회 본청 앞 벚나무에 만개한 벚꽃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
국회는 최근 윤중로 벚꽃 구경 등과 관련해 자체적으로 '벚꽃과 함께 하는 국회'라는 주제로 각종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국민의 대의기관으로 '독립국' 대한민국의 상징인 국회의사당이 안팎으로 '제국주의' 일본을 상징하는 나무와 꽃으로 뒤덮여 있고 국회 측도 이를 당연히 여기는 셈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국회는 현재 독도특위를 설치하는 등 일본의 역사 왜곡과 민족말살정책의 잔재를 없앤다며 갖가지 작업들을 벌이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벚꽃축제’라는 명칭도 문제가 있어 ‘봄꽃축제’로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는 마당에 정작 국회가 이런 행태를 보이는 것은 스스로 대한민국 상징기관으로서의 지위를 몰각한 처사라고 비판하고 있다.
21일 이명수 자유선진당 의원은 “대한민국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국회에 일본의 민족문화말살정책 잔재인 벚나무가 심어져 있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다”라며 “개인적인 취향을 떠나 국회의 상징성과 벚꽃의 상징성을 서로 연관해 문제의 본질을 파악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의원은 “연일 계속되는 일본의 역사 왜곡에 맞서 국회 내에 있는 왜색문화부터 처리해야 한다”며 “이 같은 논란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부 국회의원 등은 "왕벚나무의 자생지가 제주도이고 일본이 개량한 왕벚나무를 다시 우리나라로 들여온 것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으며, 따라서 벚나무나 벚꽃 자체가 왜색이 아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는 "일부 국회의원들의 이런 논리는 현실적으로 벚꽃이 일본의 상징적인 국화로 취급되고 있는 점에 비추어 어불성설"이라며 "벚나무와 그 꽃은 '제국주의' 일본의 민족말살정책의 상징물로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도 세계 제2차대전 패전 이후 일본의 급성장을 빗대어 벚나무가 일본의 상징이라는 것을 전제로 ‘벚꽃이 다시 핀다’고 1970년대 보도한 적도 있다.
일본에서 벚꽃은 정식 나라꽃으로 지정된 것은 아니지만, 일본 국민은 벚꽃을 일왕과 군국주의의 대표적 상징물이자 사실상의 나라꽃이라고 여기고 있다.
벚꽃은 일왕에 대한 충성의 상징이기도 하다.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 함대에 전투기를 몰고 투신했던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은 가슴과 어깨에 벚꽃을 꽂고 임무를 수행했고 1870년에서 1943년 사이 일본군 휘장의 모양을 결정하는 소재로도 사용됐다.
벚꽃은 일본인들의 생활 문화 속에도 깊이 내재해 있다. 결혼식 등의 경사스런 날에 벚꽃과 벚꽃 차를 나누고 일기예보시간에는 벚꽃의 개화시기를 알 수 있는 벚꽃 전선에 대한 방송 등을 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은 우리나라의 민족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창씨개명, 한글 사용금지 등을 실시하는 동시에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무궁화를 모두 없애고 일제의 상징인 벚나무를 관공서, 길거리, 유원지 등에 심는 정책을 추진했다.
명승희 대한무궁화중앙회 총재는 “대한민국 입법의 성지인 국회에 벚나무가 있다는 것에 대해 무감각한 국회의원들은 독도 문제를 언급할 자격도 없다”며 “나라 잃은 설움을 벌써 잊어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은 조직적으로 벚나무를 심어 민족정신을 말살했다”며 “선조들이 벚나무를 없애고 민족정기 고취를 위해 무궁화를 지키려 했던 역사적 노력이 헛되게 됐다”고 말했다.
명 총재는 “35년동안 개인적으로 무궁화를 알리고 벚나무에 대한 일본 잔재의 상징성을 알렸지만 벚꽃축제라는 이름을 바꾼 지역이 단 한곳 밖에 없다”며 “각 지자체가 벚꽃에 대한 역사적 논란보다는 축제를 통한 수입을 쫓기에 바쁘다”고 개탄했다.
그는 "국내 대표적인 벚꽃축제인 진해 벚꽃축제의 경우, 일본이 일제 강점기에 임진왜란 당시 13만여명의 조선인 코와 귀를 베어 일본에 보낸 전과와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한반도 점령에 성공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일왕이 벌인 축제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말했다.
진해는 임진왜란 때 왜적에 맞서 나라를 지킨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군항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국회는 지난 13~17일 ‘벚꽃과 함께 하는 국회’를 주제로 국회 경내에서 ‘한글로 쓴 세계평화지도 특별전’ 등의 행사를 개최했다.
국회 경내에 있는 벚나무는 최소한 100그루 이상으로 국민의 혈세인 예산을 들여 심었으며 국회의사당 준공 시기인 1975년~1980년 대부분 심어졌고 2007년 의정관 준공 때 추가로 심었다.
국회사무처 시설과 관계자는 “국회 내에 심어진 벚나무는 1975년 국회의사당 준공 이후에 심은 것으로 파악된다”며 “어떤 품종의 벚나무가 심어져 있는지 정확히 파악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품종 등이 표시된 세부적인 대장이 없고 벚나무 종류가 워낙 많아 육안으로 구분하기 어려워 정확히 파악하긴 힘들지만 아마도 왕벚나무가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식 국민대학교 산림환경시스템학과 교수는 “왕벚나무는 다른 벚나무 품종과는 다르게 꽃이 먼저 다 피고 난 후 잎이 나오는 등의 특징이 있다”며 “조경을 관리하는 등의 업무를 하는 사람이라면 육안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11~18일 국회의사당 뒤편 순환도로인 윤중로 벚나무 가로숫길에서 열린 '여의도 봄꽃축제'에는 4억2000만원의 영등포구청 예산이 투입됐으며, 600여만명 시민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