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녀는 게임기 안 가상의 세계에 산다. 세계 굴지의 게임기 메이커 닌텐도가 내놓은 최신 프로그램 ‘러브 플러스’다. 하이라이트는 실제로 여행을 즐기는 순간이다. 게임을 잘해서 점수를 많이 따면 현실 세계에서 관광을 떠날 수 있다. 물론 손에는 그녀가 머무는 게임기가 들려 있다.
진짜 남자와 가짜 여인은 일본의 시즈오카현 아타미로 여행을 떠난다. 신혼 여행지로 유명한 곳이다. 호텔 직원도 커플로 대우해 체크인한다. 두 사람이 오붓한 시간을 즐기게 될 수 있으면 말도 걸지 않는다.
신혼부부의 발길이 호주나 하와이로 돌아서며 관광객이 줄어들자 아타미시가 닌텐도와 연계한 관광 상품을 개발한 것이다. 벌써 외로움에 찌든 남성 1500명이 다녀갔다.
지난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이버 여친’과 아타미시를 찾은 대학생의 소감을 소개했다. “살면서 로맨스가 별로 없었는데 이번 여행이 고독에 대처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러나 상상해 보라. 게임기하고만 말하고, 터치스크린으로 연인의 손을 잡았다고 생각하고, 기계 속의 여인과 그윽한 사랑의 눈길을 나누는 장면을…. 이게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이 돼선 안 된다.
지난 5월 일본 정신신경학회 등 4개 학회가 공동으로 선언문을 발표했다. 국가의 3대 질병에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포함하라고 정부에 촉구하고 나섰다. 암이나 심장병만큼 국민 건강에 지대한 폐해를 끼치고 있다며 우울증을 ‘국민병’으로 규정했다.
일본에서 우울증 환자는 공식 통계로만 지난 2008년 이미 100만명을 넘어섰다. 1990년대만 해도 제자리에 머물던 게 2002년부터 급증하고 있다.
민간 조사기관인 노무행정연구소가 지난 1일 민간 기업의 정신질환 현황을 발표했다. ‘마음의 병을 앓는 직원이 증가했느냐’는 질문에 절반에 가까운 44.4%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일본 정부도 심각성을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정신질환을 정기 건강진단에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자살 및 우울증 대책팀’을 후생노동성에 설치했다.
마음 병이 이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재앙으로 커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업무로 말미암은 스트레스 때문에 우울증 등 정신병에 걸렸다’고 산업재해를 청구한 건수가 지난해 1136건에 이르렀다. 전년보다 무려 5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캐나다 연방법원은 지난해 정신병을 앓는 한국인 여성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해 영주권을 받도록 허용했다. 캐나다 난민이민위원회는 ‘정신 질환을 제대로 치료해 주지 않는 한국의 치료 시스템에 의해 피해를 받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법원은 이 결정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6년 현재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 545만명이 각종 정신질환에 시달렸다. 전체 인구의 17.1%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수치다.
이후 4년 동안 늘었는지, 줄었는지 모르지만 5명 중 1명은 정신이 아픈 사람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정신 질환이 있다고 인정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 숫자는 얼마든지 올라갈 수 있다.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 4명 중 3명이 ‘정체성 폐쇄’ 진단을 받았다. 보통 때는 안정적이고 순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단 자존심이나 체면이 손상됐다고 느끼면 폭발하는 사람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우리나라는 자살률과 근무시간이 1위고 수면 시간은 가장 적다. 참고로 일본의 자살률은 우리보다 두 단계 처진 3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