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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취·인아의 남다른 사랑…그 사랑에 대한 활자의 커밍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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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현 기자

승인 : 2010. 05. 27. 15:59

[송지현의 BOOK소리] 4teen·이런 사랑
“너 어제 ‘개취’ 봤어?”
“난 ‘인아’ 보는데. 그게 더 재밌지 않니?”

위 대화에서 ‘개취’ 와 ‘인아’ 가 뭐냐고 묻는다면 당신에게 트렌드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감히 말하겠다. 2010년 5월을 살면서 이 단어를 모르다니!

‘개취’ 와 ‘인아’ 는 두 자릿수 시청률을 유지하며 연일 화젯거리로 기사에 오르내리는 드라마 ‘개인의 취향’ 과 ‘인생은 아름다워’ 의 줄임말이다. 여기서 문제. 두 드라마의 공통점은? 민감한 당신이라면 바로 알아차렸을 터. 바로 ‘동성애’ 코드다.

MBC '개인의 취향'과 SBS '인생은 아름다워' 홈페이지 사진. (출처=MBC·SBS)
‘개취’ 에서 동성애가 양념처럼 맛깔나게 얹어져 있다면 ‘인아’ 에서는 우려낸 국물처럼 스며들어 있다. ‘개취’ 주인공 진호는 가짜 게이고 ‘인아’ 주인공 경수와 태섭이는 진짜 게이다.

가짜냐 진짜냐의 문제가 아니라, 동성애를 다뤘느냐 다루지 않았느냐가 문제다. 양념을 얹던 국물을 붓던,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 라는 이슈가 드디어 지상파 드라마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게 중요한 거다.

사실 동성애는 무겁다. 내 입장 아니라고 단지 재미로 보기에는 너무 무거운 소재다. 수없이 많은 논란과 입장들과 감정적인 소용돌이가 그 안에 있다. 심각하게 보다 보면 한없이 침몰하는 게 이 소재다.

논란이 되고 있는 '인아' 의 경수·태섭 커플(좌) '개취'에서 전진호를 바라보는 최관장(우)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다. 막상 정면돌파를 하자면 너덜너덜해져 상처투성이인 어두운 현실을 다뤄야 하는데 그러자니 너무 침울해지고, 측면돌파를 하자니 단지 동성애를 흥행코드로만 사용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개인의 취향’ 과 ‘인생은 아름다워’ 는 동성애를 아주 조심스럽게 깨지기 쉬운 그릇을 만지듯 아껴 다루고 있다.

“게이 남자친구 어때?”

얼마 전 친구가 물어본 말이다. 드라마 대사이기도 하다. 그놈의 게이 타령. 편한 듯 하면서도 불편하게 느껴지는 말이다. 마치 동성애에 대한 상반된 입장을 모두 포함한 것 같다.

그리고 연이어 드는 생각. ‘게이 남자친구’ 라는 호칭 자체가 그들은 ‘다른 사람’ 이라고 애초부터 구분짓는 바탕이 아닌지. ‘인정하는 척 역차별’ 하는 구린내가 풍긴다.

딱히 주목해서 바라봐야 하는 것이 아닌, ‘게이 남자친구’ 라고 규정짓지 않아도 되는 자연스러운 그 무엇. 그런 시선을 가질 순 없을까.

영상을 봤으니 텍스트를 읽으며 그 당연하면서도 낯선 시선을 따라가 보는 것을 추천한다. 텍스트는 매체의 특성상 조금 더 생각할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여기 동성애를 자극적인 흥행 코드로 삼지 않고 신선하게 풀어낸 책 두 권이 있다.

이시다 이라의 4teen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중도를 잘 지킨 소설이다. 어떻게 보면 동성애가 주연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지극히 매력적이다. ‘이방인들’ 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산뜻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나오키 상 수상작이니 대중성도 확보됐다. 짧은 이야기들의 연작 형식으로 가볍게 읽기에도 부담이 없다.

단순하고 담담한 문체는 ‘흔히 볼 수 없는 사람들’ 그래서 세상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들에 대한 거부감을 종식시켰다. 이 작가, 멋지다!

책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실제 주인공은 넷이지만 이 주인공들이 만나는 사람들에 관한 에피소드를 다룬다. 그 사람들 중에는 병원을 탈출한 시한부 환자, 개그맨이 되고 싶은 개그감 없는 소년, 거식증 소녀 그리고 동성애자 친구도 포함돼 있다.

분명히 그 모두는 나와 다른 이들, 대부분의 사람들과 ‘섞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동성애자만이 아닌 소외된 사람들을 함께 다룸으로서 강한 색깔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아니, 애초에 색깔은 하나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듯하다.

필립 베송의 ‘이런 사랑’ 은 다른 면에서 마음에 끌린다. 4teen의 색깔이 눈부신 하늘색이라면 '이런 사랑‘ 의 색깔은 빈티지한 청회색이다. 하지만 우울하다기보다는 무척이나 세련되다.


한 여자와 두 남자. 자칫 통속적으로 흐를 수 있는 소재를 동성애적 사랑과 미스터리적 요소로 멋지게 포장했다. 문장들은 깔끔하고 유려하며 하나하나 모자람이 없다. 씹고 씹고 되씹어도 맛이 난다.

더구나 신선한 구성 방법의 충격! 자세하게 언급하는 것은 오히려 이 책을 읽을 독자에 대한 실례가 될까봐 꺼려질 정도.

주인공 루카는 시체다. 그에게는 양지의 연인 ‘안나’ 가 있고 음지의 연인 ‘레오’ 가 있다. 이 셋이 만들어내는 합주곡은 기괴하면서도 아름답고, 공허하면서도 벅차다.

읽다 보면 ‘레오’ 가 남창이며 루카와 비밀스러운 동성애적 사랑을 나눈다는 사실은 저 멀리 잊혀진다. 그저 사랑, 욕망, 그리고 세 인간이 존재할 뿐이다.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꽤나 거창해 보이지만, 책 속지 무게가 가벼워 들고 다니며 금세 독파할 수 있다. 게다가 독백 형식으로 서술돼 읽기 편하다는 사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이방인이 될 수 있다. 같은 눈코입을 가졌다고 해서,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고 해서 내가 소수자가 아닐 거라는 생각은 금물.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농담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 또 자신은 몹시 화가 났는데 남들은 그걸 별 거 아닌 일로 여길 때도 있지 않은가. 그럴 땐 나도 일순간 다른 세계의 존재가 된다.

동성애는 ‘존재를 알리기 위한’ 고비를 넘었다. ‘인정받기 위한’ 고비는 넘고 있는 중이다. 정말 남은 과제는,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 그들이 ‘다르다는 이유로 눈에 띄게’ 그려지지 않을 때까지 우리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이다.

섞이고자 하지만 섞이기 힘든 모든 사람들은 이 책들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그리고 ‘틀림’ 과 ‘다름’ 의 가치관이 과연 무엇인지 잠잠히 생각해 보자.
송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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