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가왕(歌王)’ 조용필 환갑 맞았다

‘가왕(歌王)’ 조용필 환갑 맞았다

기사승인 2010. 03. 19. 13:20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영원한 오빠’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문연배 기자]‘국민가수’ 조용필이 21일 환갑을 맞는다.

그동안 ‘단발머리’ ‘돌아와요 부산항에’ ‘못찾겠다 꾀꼬리’ ‘허공’ 등 발표하는 노래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가왕(歌王)’으로 불리는 조용필. 그의 환갑을 맞아 후배 가수들과 공연 스태프가 조촐한 축하자리를 마련하겠다는 뜻을 전하자 조용필은 숫자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한사코 만류했다고 한다.

그러나 숫자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본인의 말과는 다른 의미로 조용필은 숫자로 재단하기 힘든,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 그의 환갑을 맞아 지난 40여년간 ‘영원한 오빠’로 불리며 무대 위에서 정열을 불사르는 조용필을 되돌아본다.

‘가왕(歌王)’ 조용필
1968년 경동고를 졸업한 그해 11월 친구 셋과 밴드 ‘애트킨스’를 결성했다. 이후 미 8군에서 화이브 핑거스 25시 등 밴드의 기타 연주를 하며 리듬에 대한 감각을 익혔다. 그리고 1975년 조용필과 그림자 라는 밴드를 결성, 돌아와요 부산항에 를 발표해 인기가수의 자리에 곧바로 올라섰다.

하지만 곧 시련이 닥쳤다. 1972년 미군부대서 활동했을 당시 대마초를 피웠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 조용필은 밴드를 해체하고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조용필은 1980년이 돼서야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이 수록된 1집을 발표하며 전성기를 연다. 그리고 2집 '촛불' , 3집 '미워미워미워' , 4집 '못찾겠다 꾀꼬리' , 5집 '나는 너 좋아' , 6집 '눈물의 파티' , 7집 '미지의 세계' , 8집 '허공' , 9집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등 발표하는 음반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80년대 우리가요가 서구 팝을 일방적으로 맹종하던 것에서 벗어나, 록·블루스·소울·포크 등으로 다양성을 확보한 건 조용필의 덕이 컸다. 그런 이유로 연말 가요시상식은 조용필의 독무대였다.


/연합
원조 한류스타…공연으로 돌아가다
80년대 후반 일본에 진출한 조용필은 1987년부터 NHK 홍백가합전 에 4년 연속 출연했다. 조용필은 당시 일본 도쿄 시부야 공회당 공연을 시작으로 1년 365일동안 무려 153회를 북해도에서 최남단 오키나와까지 저인망식으로 훑으며 일본의 음악팬들 앞에서 라이브 무대를 펼쳤다.

물론 좋은 노래를 선보이기 위한 노력도 함께했다. 당시 조용필의 매니저 맹정호 씨는 “일본의 방송국에서는 다음날 부를 노래를 미리 테이프에 담아 줬는데, 용필이 형의 손에는 늘 휴대용 테이프레코더가 들려있어서 어떤 곡도 문제없이 소화할 정도로 연습했다”고 전했다.

80년대 가요대상을 휩쓸던 조용필은 1986년에 돌연 “후배들을 위해 더 이상 수상하지 않겠다”고 불참의사를 밝히며 가요대상 수상을 거절했다. 그리고 1992년부터는 방송활동 중단을 선언하고 공연에 전념했다.

이후 공연무대로 돌아간 조용필은 1999년 대중가수로는 처음으로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 입성해 6년 넘게 공연을 펼쳤다. 그의 공연은 이후 서울 잠실주경기장을 시작으로 전국투어로 펼쳐진 35주년, 40주년 기념공연에서 절정에 달했다. 40주년 기념공연은 무려 35만 명의 유료관객을 동원했다.

최근 미국에서 휴식을 취하고 돌아온 조용필은 올해도 어김없이 공연무대에 오른다. 5월 대규모 공연과 지방투어로 팬들과 만날 계획이다. 환갑을 맞은 조용필. 그는 우리시대의 진정한 ‘슈퍼스타’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