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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동행 24시] 서민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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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원 기자

승인 : 2009. 12. 09. 11:34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은 8일 출입기자단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앞으로는 제발 ‘실세’니 ‘2인자’니 ‘힘 있는’ 이런 표현 좀 빼 주세요”라고 읍소했다.

하지만 그가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킨 1등 공신이고, ’실제적 영향력을 가진’ 실세(實勢)임은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난 9월 30일 그의 위원장 취임 이후 권익위의 위상이 달라지는 것도 실세라는 사실과 무관치 않다. ‘읍소’는 해묵은 민원을 단기간에 해결하는 그의 행보에 대해 야권에서 ‘이재오 로또’라고 비난하는 데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권익위 관계자 사이에서는 ‘취임 전에는 오해도 했는데 실제 그의 일하는 모습을 보고 많이 감탄한다’는 반응이 많다.

권익위 고위관계자는 “이 위원장의 힘은 실세이기 때문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과 몸에 배인 성실함에서 나온다”며 “권익위의 위상변화도 이 위원장의 ‘24시간 올인’과 실무자들의 열정에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본지가 9일 ‘UN 세계반부패의 날’에 앞서 지난 7일 그를 출근부터 퇴근까지 밀착 동행 취재한 것도 각종 매스컴을 통해 형성된 수많은 ‘이미지’의 진짜 모습을 알아 보기 위해서이다. ‘서민’ 이 위원장은 취임부터 10월 23일까지 자전거로 출근하다가 날씨가 추워진 10월 26일부터 버스, 지하철로 출·퇴근하고 있다.



◇오전 6시, 역촌중앙시장 버스정류장

새벽 서울 은평구 구산동 골목길. 시계 바늘이 5시 54분을 가리키는 순간 베이지색 트렌치 코트를 입은 한 남자가 어둠을 가르며 나타났다. 차량용 헤드라이트에 비친 얼굴이 낯익은 모습이다.

이재오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 ‘왕의 남자’, ‘2인자’, ‘실세’ 등으로 불리며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그가 눈앞에 나타났다. “안녕하세요”라는 기자의 인사에 이 위원장은 반갑게 웃으며 악수를 건넨다.

이날 서울의 오전 기온은 영하 5도를 밑돌았다. 새벽녘 공기는 더 차갑게 느껴졌다. 이 위원장은 이내 도착한 버스정류장에서 주민들과 가벼운 인사를 나눴다. ‘역촌중앙시장’ 정류장에서 새벽 버스를 타려던 시민들은 이 시간에 버스를 기다리는 그의 모습이 익숙한 모양이다. 시민들은 이 위원장에게 “버스가 늦네요”, “수고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넸다.

이 위원장이 기다리는 752번 버스가 이날따라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는 “6시에 버스가 오는데 오늘은 안오네…”라며 시계를 쳐다봤다. 버스는 6시10분이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버스에 오른 이 위원장은 승객들과 가볍게 인사한 뒤 자리에 앉아 조간신문을 꺼냈다. 헤드라인 위주로 몇 개의 신문을 읽어내려갔다.

신문을 읽는 그에게 뒤늦게 버스에 오른 승객들이 반갑게 인사했다. 한국철도시설공단 직원으로 일하는 오 모(43)씨는 “6시 7분 버스에서 위원장님을 만난 뒤로는 꼭 이 시간에 버스를 탄다”며 “매일 버스로 출근하시는 위원장님을 존경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의 뒷좌석에 앉아있던 동네 주민 김 모(50)씨는 “위원장님을 매일 본다”며 “서민적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도시락과 함께하는 업무보고

6시 35분 권익위원회에 도착한 이 위원장이 직행한 곳은 6층 체력단련실. 그 곳에는 이미 몇몇 직원들이 나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 위원장은 최근 추워진 날씨로 인해 자전거로 출근하지 못하는 ‘설움’을 달래듯 곧바로 자전거 모양의 헬스기구에 올라 페달을 밟았다.

7시 30분에는 간부회의가 있었다. 운동 덕분인지 이 위원장의 몸놀림이 한결 가벼워 보였다. 권익위 마크가 새겨진 잠바로 갈아입은 그는 간부들에게 “두 달 동안 잘해 주셨다”며 “좀 더 성숙하게 일하자”고 주문했다.

9시가 가까워오자 실·국장급 간부들이 각종 결재서류를 들고 위원장실 앞을 가득 메웠다. 이 위원장은 부인 추영례 여사가 챙겨 준 도시락으로 아침을 해결하며 각종 보고를 받았다. 분홍빛 도시락통에 담긴 반찬은 김과 갈치조림 정도가 전부였다. ‘서민’ 이 위원장에 어울리는 소박한 찬(饌)거리다.

오전 9시 10분. 10층 대강당에서 월례조회가 열렸다. 우수직원에 대한 표창도 수여됐다. 이 위원장은 “권익위에 온 뒤 많은 일이 있었고 또 많은 일을 했다”며 “오히려 제가 와서 권익위가 하는 일이 왜곡되거나, 제 개인의 역할로 치부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권익위의 성과는 전적으로 실무자들의 지혜와 노력, 민원인들에 대한 애정 때문”이라며 언론에 ‘위원장 파워’만이 집중 부각되는 점을 미안해했다.

그는 이어 “성장 속의 ‘그늘’을 메우는 것이 권익위의 역할”이라며 “몸을 아주 낮추고 침착·겸손하게, 끈질기고 성실하게 일해달라”며 직원들을 격려했다.

◇‘5000원짜리’ 대신 스테이크

오전 10시. 국회에서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열렸다. 이 위원장은 예결위 참석을 위해 국회로 가는 자신의 ‘카니발’ 승합차에 올랐다. 그는 동승한 기자에게 “지금까지는 언론이 ‘권력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면서 “내가 가진 정치적 위상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내 개인적 노력과 권익위의 역할이 묻혔어. 그런게 답답하지”라고 말했다.

그는 수행원들에게 최근 분주한 일정으로 인해 좋아하는 운동을 마음대로 못하는 ‘민원’도 제기했다. “축구 못하지, 등산 못하지… 아 요즘 힘들어”라고 불평하던 이 위원장은 “그래도 27일에는 직원들과 등반 계획을 세웠다”며 금새 환하게 웃었다. 타고난 ‘운동체질’인 그는 취임 후 권익위 내에 등산과 자전거 동호회도 만들었다고 자랑했다.

오전 국회 일정을 마친 이 위원장은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기자클럽 오찬에 참석했다. 외신기자들과의 오찬이라는 특수성 때문인지 이날 점심은 ‘5000원짜리’가 아닌 스테이크로 대체됐다.

예결위 일정이 저녁으로 연기되면서 국회 일정이 취소된 이 위원장은 오후 2시 권익위 대강당에서 열린 ‘공직자 윤리의식 제고 및 부패방지를 위한 공개토론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반부패청렴이 곧 국가경쟁력”이라며 “공공기관과 공직유관기관을 대상으로 청렴도 평가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했다.

위원장실에서 업무보고와 외부 손님 접견으로 오후 시간을 보낸 그는 저녁 6시 15분경 다시 예결위 참석을 위해 국회로 출발했다. 예결위가 속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위원장은 저녁 식사를 위해 자리를 떴다. 저녁 일정은 비공식 일정으로 이뤄졌다.

저녁 7시경부터 시작된 식사는 밤 9시 무렵까지 계속됐다. 이 위원장이 국회로 복귀한 시간은 밤 9시 30분. 식사시간이 길어진 것을 보니 누군가와 범상치 않은 사안을 나눈 모양이었다. 그는 퇴근길에 기자가 ‘의문의 저녁식사’ 메뉴를 묻자 “설렁탕”이라며 “근처에서 국회 친구들하고 먹었다”고 했다.

이날 예결위에서 의원들의 질문이 정운찬 총리에게 집중되자 이 위원장은 이따금씩 허공을 응시했다. 밤 10시 15분이 되자 그는 본회의장을 빠져 나와 근처 6호선 광흥창역으로 이동했다. 광흥창역에서 이 위원장의 집이 있는 구산역까지는 14정거장. 약 40분이 소요되는 거리다. 지하철에 올라 몇몇 손님들과 인사를 나눈 그는 피곤한 듯 이내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아이고, 선덕여왕 끝나버렸네!”

밤 11시가 다 되어 구산역에 도착했다. 전철에서 내린 그는 지하철 도우미로 일하는 할아버지에게 “수고하세요”라고 인사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11시 반까지 근무합니다”라며 고마워했다. 광흥창역에서도 그랬다. 그는 “아무도 인사하지 않을텐데 나라도 해야지”라며 멋쩍게 웃었다.

구산동 자택에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 5분경. 꼬박 17시간을 밖에서 보낸 셈이다. 23평 정도 규모의 크지 않은 집은 깨끗하고 소박해 보였다. 이곳에서 세 자녀를 키웠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이 위원장의 수행비서는 “30년도 더 된 집”이라며 “그 동안 대문만 리모델링했다”고 귀띔했다.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 이 위원장은 “밤늦은 ‘귀가 기념’으로 시계 앞에서 포즈 한 번 취해달라”는 기자의 부탁에 활짝 웃으며 손으로 ‘브이(V)자’를 그렸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오늘은 단지 지나가는 과정의 일부”라며 긴장을 놓지 않던 그도 집에 도착하자 마음이 편해지는 모양이었다. 어느새 ‘자연인 이재오’로 돌아와 있었다.

이 위원장은 이내 거실에 놓인 텔레비전을 보며 짧고 굵은 탄식을 내뱉었다.

“아이고, ‘선덕여왕’ 끝나버렸네!”

이재오 위원장의 하루(2009년 12월 7일)

05:00 기상. 출근준비. 조간신문
05:55 출근
06:10 버스탑승
06:35 권익위 도착. 운동. 샤워(6층 체력단련실)
07:30 주간간부회의(11층 대회의실)
08:40 도시락(아침). 업무보고(11층 위원장실)
09:10 월례조회. 우수직원 표창(10층 대강당)
10:00 국회 예결위 참석
11:40 외신기자클럽 오찬(프레스센터)
14:00 공직자 윤리의식 제고 및 부패방지를 위한 공개토론회 참석(10층 대강당)
15:30 업무보고 및 외부손님 접견(11층 위원장실)
18:15 권익위 출발
18:40 국회 예결위 참석
19:00 저녁식사(설렁탕)
21:30 국회 예결위 참석
22:15 국회 출발. 광흥창역(6호선) 도착
23:00 구산역 도착
23:05 귀가

윤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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