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교수는 오로지 맥주를 맛보려고 길을 떠나는 '비어 헌터'(beer hunter)이고, 첫 잔은 가장 배고플 때 안주 없이 마셔야 한다는 철칙을 지키는 맥주 애호가다.
그가 밟은 땅은 영국과 아일랜드, 체코, 독일, 오스트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덴마크 등 8개국의 20개 도시다. 이는 맥주가 메소포타미아에서 탄생했다지만 가장 다양한 맥주를 생산한 곳이 유럽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영국의 오래된 펍(Pub) 카운터에 늘어선 25개의 생맥주 꼭지를 보고 뭘 마실지 고민하는 장면이나 파티 분위기가 나는 독일의 비어홀에서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맥주 한잔을 받아드는 장면을 읽으면 시원한 맥주 한잔이 절로 그리워진다.
저자의 아일랜드 기행을 보자. 저자는 먼저 아일랜드의 대표적 맥주는 '기네스'라고 소개한다. 기네스는 페일 몰트(pale malt)라는 싹튼 보리를 주 원료로 하고 볶은 보리와 보리 플레이크(flake)를 10% 가량 섞어 만든 맥주다. 이런 배합으로 진하고 깔끔한 쓴맛과 카푸치노 크림 같은 거품과 향이 난다.
저자는 더블린의 주점 거리인 '템플바'로 들어서 아일랜드 음악이 울려 퍼지는 펍에서 맥주를 마신다. 또 버스와 배를 타고 아란 섬에 들어가 바텐더가 맥주를 따르는 모습을 시계로 시간까지 재가며 지켜보기도 한다. 바텐더는 먼저 잔을 기울여 10초간 따르고 엷은 고동색의 맥주가 검게 변할 때까지 2분간 기다렸다가 잔을 똑바로 세워 나머지 잔을 채운다.
맥주의 본고장인 독일에서의 여정은 더 길다. 독일에서만 뮌헨, 밤베르크, 하이델베르크, 쾰른, 뒤셀도르프, 베를린 등 6개 도시를 돌아다닌다.
뮌헨에서 달콤한 몰트의 맛이 살짝 느껴지는 골든 라거 '헬레스', 밤베르크에서 훈제 향이 나는 맥주 '라우흐비어', 쾰른에서 탄산이 적고 부드러워 마시기 편한 '쾰쉬', 뒤셀도르프에서 홉의 쓴 맛이 잘 느껴지는 고전적인 맥주 '알트비어'를 마신다.
독일 맥주가 유난히 맛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그 답으로 16세기에 맥주의 원료로 보리 외에 다른 곡물이나 과일, 향신료를 일절 금한 '맥주 순수령'을 소개한다.
이 책의 장점은 "나는 무슨 무슨 맥주를 마셨다"고 나열하는 단순 기행문이 아니라는 것. 저자는 맥주의 어원과 원료부터 제조 과정, 효모의 역할, 심지어는 맥주의 종류에 따라 어울리는 잔까지 풍성한 지식과 정보를 안겨준다.
맥주 제대로 마시는 법도 귀띔해 준다. "맥주는 오감으로 마시라"는 게 저자의 철학. 뚜껑을 따거나 맥주를 따르는 소리, 색깔이나 하얀 거품이 넘칠 듯이 올라오는 모습, 알싸하고 깊이 있는 향, 혀에 닿는 부드러움과 맛, 탄산의 자극이나 목으로 넘길 때의 느낌을 두루 느끼라는 것이다.
336쪽.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