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연구원 최성희 박사 |
특히 최근 각종 언론매체 및 기관보고서를 통해 선물시장의 투기세력이 가격상승을 주도한다는 주장이 빈번하게 제시되고 있다. 투기원인론의 핵심요지는 실제 원유거래를 하지 않는 투기자들이 석유선물시장에 개입하여 국제원유가격을 상승시킨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2008년 1분기 수급상황이 일시적으로 2007년의 상황과 비교해서 다소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기에 투기자금이 유가를 끌어올린다는 주장은 더욱 활발하게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석유시장 및 석유라는 제품의 특성 그리고 기존의 실증연구의 결과들을 감안할 경우 국제유가상승의 원인이 투기세력에 있다는 주장은 쉽게 동조하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우선 석유선물시장의 특성과 현물시장과의 관계를 감안해보자. 선물시장에서 실제 실현되는 석유거래규모는 매우 미비하다.
2005년 기준으로 전체 석유선물량의 약 3%내외만이 실제 현물거래로 실현될 뿐, 선물거래의 대부분은 계약서상에서만 추진될 뿐 현물인도는 이루어지지 않기에 선물과 현물가격의 가격결정구조는 충분히 분리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만약 선물시장의 투기세력이 선물가격을 상승시켰다면, 실제 수급상황으로 결정되는 현물가격보다 높아져 선·현물 가격간 괴리가 발생하게 되고 곧 시장조정과정을 거치면서 선물가격이 현물가격으로 수렴하며 하락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현물유가 또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현물가격이 상승한다는 것은 가격결정구조상 실제거래에서도 수요량증가가 공급량증가보다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현재 국제유가상승은 투기세력으로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렇다면 이런 주장이 뒤따를 수 있다. 과거 튤립투기사례나 일반적인 귀금속제품에 대한 투기와 같이, 석유선물시장에 참가하는 투기세력이 현물시장에도 참여해서 석유를 실제 구입한 후 투기를 목적으로 별도로 보관하면서 가격을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이 역시 일견 그럴 듯해 보이지만, 석유라는 제품의 특성을 고려할 경우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 석유는 튤립이나 일반 귀금속과는 달리 저장이 용이한 물품이 아니라 저장을 위해서 엄청난 고비용을 요구하는 저장시설이 필요하다.
따라서 과연 어떤 투기자가 석유저장시설을 갖추기 위한 고비용을 감수해가면서 언제 하향세로 돌아설지도 모르는 국제석유시장에 경제적 동기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투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선물투기세력이 국제유가상승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동조를 받지 못하는 또 다른 핵심배경은 실제 시장자료 분석으로 그 주장을 입증하기가 매우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이미 학술적 검증절차를 거친 대다수의 연구논문들은 미국 뉴욕선물시장(New York Mercantile Exchange: NYMEX)에서 활동 중인 일명 투기자(speculators)의 거래행태와 가격변동간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가격이 상승하니까 투기자들이 몰리는 것이지 투기자금이 몰려서 가격을 상승시킨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음을 지속적으로 발견하고 공표하고 있다.
선물시장의 투기세력이 가격을 상승한다는 주장은 사실 어제 오늘 이야기는 아니다. 2000년 9월, 국제유가가 1년 만에 배럴당 10달러 이상 상승할 때도 선물투기세력이 가격상승을 견인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시되었다가 잠잠해진 사례가 있었다.
따라서 이렇게 국제유가변동성이 심할 때마다 그 원인을 투기세력으로 돌리는 것보다는 시장의 수급상황을 보다 면밀히 분석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다. 즉, 타이트한 석유수급상황에 의해 유가는 지속적으로 상승압박을 받을 것이고, 단기적 수급상황개선이 곧바로 가격하락으로 반영될 수는 없겠지만 시차를 두고 천천히 반영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국제석유시장의 구조적 수급특징에 근거, 석유순수입국인 우리나라는 석유공급안보 및 석유소비감소를 위해 지속적인 에너지정책들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또한 석유수급안정화를 위한 경제적 대응전략과 함께, 산유국 및 소비국과의 유대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수 있는 정치외교 전략도 확대·지속시켜 나가는 것이 올바른 국제유가분석에 기반 한 적절한 정책적 방향이라고 판단된다.